종교지도자들 "대화와 포용으로 한반도 평화 도래하길"

입력 2017-09-05 09:00
종교지도자들 "대화와 포용으로 한반도 평화 도래하길"

이탈리아 성지순례…교황 "증오 아닌 존중으로"



(바티칸시티·로마=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이웃 종교의 신앙과 교리를 다 수긍하지는 못할지라도 저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서로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나와 다른 것을 '틀림'으로 규정하지 말고 포용합시다."

4일(현지시간) 오전 '가톨릭의 심장' 바티칸. 여름 휴가 시즌이 끝난 9월의 로마는 일상으로 돌아온 듯 활기찬 소음으로 가득 찼다.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이 곳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조용히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이웃 종교 성지순례에 나선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

7대 종교 간 화합을 위해 만들어진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이하 종지협·대표회장 김희중 대주교)는 지난달 31일부터 4박 5일간 성지순례를 떠났다.

김희중 대주교, 원불교 한은숙 교정원장, 천도교 이정희 교령, 유교 김영근 성균관장 등 4대 종교 수장과 개신교의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이경호 주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민족종교협의회 관계자가 자리를 함께했다.

종지협은 2007년부터 캄보디아, 중국, 러시아, 터키, 스페인 등 국내외 종교문화 유적지를 방문하고 있다.

올해는 '가톨릭의 심장'인 이탈리아 순례에 올랐다. 성 바오로 대성전과 베네딕토 수도회의 총본산인 몬테카시노, 이슬람 건축양식을 받아들인 성 안드레아 대성당이 여정에 포함됐다.

종교 지도자들은 순례 둘째 날인 2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했다. 교황은 몸소 일어나 이들의 손을 맞잡는 등 관습을 뛰어넘는 소탈한 모습으로 깊은 감동을 줬다.

교황은 "종교 지도자들은 증오에 찬 말과 반대되는 몸짓으로 평화의 화법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았다"며 "종교 간 대화가 결실을 거두려면 늘 개방적이면서도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김희중 대주교의 요청에 "응당 그렇게 하겠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했다.





종교 지도자들은 순례길 내내 대화를 강조했다.

김 대주교는 "다양한 악기가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음악이 탄생하지 않느냐.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는 건 올바른 관계맺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불교 한은숙 교정원장은 "교황께 '심월상조'(心月相照·마음달이 서로 비춘다는 뜻)라고 쓴 합죽선을 드렸다. 모든 근원은 하나라는 뜻으로, 교황이 말씀하신 '신 앞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라는 말과 상통한다"며 "힘과 힘이 충돌하는 오늘날 새겨야 할 가치"라고 말했다.

천도교 이정희 교령은 "궁극적으로 종교라는 옷을 벗고 인간을 위한 가치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서로 벽을 쌓지 말라고 가르쳐야 할 종교가 정작 종교끼리 대립해서야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김영근 성균관장은 "우리 민족은 밑바닥에 '예'(禮)가 깔렸기 때문에 모든 종교를 존중하는 민족성이 있다"며 "교황께서는 유교의 '덕성'(悳性)을 갖춘 분이라는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시했다.



김 대주교는 "이번 핵실험은 북측이 미국과 대등하게 대화하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시한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북특사도 파견해야 한다"며 "핵 포기 선언을 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전제조건을 달지 말고, 일단 서로 만나서 공감대를 넓혀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 교정원장은 "창을 다듬으면 이를 막을 방패가 개발되고, 방패를 다듬으면 이를 뚫을 창이 개발되는 게 전쟁의 속성"이라며 "북한과 민족의 동질감을 회복해 평화롭게 갈등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교령은 "정권은 유한하지만 우리 민족은 영원하다. 정치적으로 급박한 상황이 발생했더라도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자"고 주문했고, 김 성균관장은 "종교계가 나서서 대화의 물꼬를 트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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