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으로 딴소리"…日정부, 국회서도 '개인청구권' 인정했다
1965년 협정당시~1990년대까지 청구권 인정…이후 슬그머니 '말바꾸기'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문재인 대통령의 2차대전 당시 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 인정 발언을 비판하는 일본 정부가 오히려 국가간 합의에도 개인청구권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 체결 당시 내부 문서에서는 물론 이후 국회 답변에서도 이런 입장을 견지해 온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이들이 필요에 따라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이는 일본 시민단체 '나고야미쓰비시(名古屋三菱)조선여자정신대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이 국회 속기록을 정리한 자료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20일 모임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91년 3월 26일 참의원 내각위원회에서 다카시마 유슈(高島有終) 당시 외무성 외무대신관방은 "일소(日蘇) 공동선언에서 청구권 포기는 국가 자신의 청구권 및 국가가 자동적으로 갖는 것으로 생각되는 외교보호권의 포기"라며 "일본 국민 개인이 소련이나 소련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인 피해자가 소련에 대한 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느냐"는 이토 마사토시(翫正敏)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이었다.
같은 해 8월 2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나이 순지(柳井俊二)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은 "청구권협정은 한일 양국이 국가가 가지는 외교보호권을 서로 포기한 것"이라며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로 소멸시킨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제법상 국가에 인정된 고유한 권리인 외교보호권(자국민이 타국에 의해 위법한 침해를 받거나 타국에 대해 청구권을 갖는 경우 그 구제를 타국에 요청하는 것)과 개인의 청구권은 별개라는 입장을 일본 정부가 국회에서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이런 입장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 일본 외무성이 대외비로 작성했다가 2008년 공개됐던 내부 문서에도 언급됐던 내용이다.
외무성은 이 문서에서 "한일청구권 협정 2조(청구권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내용)의 의미는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것이고, 국민의 재산(개인청구권)으로 국가의 채무를 충당한 것은 아니다"라며 "개인이 상대국 국내법상의 청구권을 갖는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이런 자료들은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부터 최소한 1990년대까지는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 청구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해왔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후 슬그머니 외교보호권 포기는 개인청구권 해결과 같은 의미"라고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도 2007년 4월 히로시마(廣島) 수력발전소 공사장으로 끌려가 가혹하게 노동을 강요당했다며 중국인 피해자와 유족들이 회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청구권은 소멸된 것이 아니지만 재판상 권리는 상실한 것"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정부가 '개인 청구권은 존재한다'는 종전 입장을 번복한데다 법원에서도 사실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등 정부 입장을 뒷받침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 발언에 대해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관계구축을 지향하는 가운데, (이런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오히려 일본 정부가 개인 청구권을 인정했던 것으로 드러난 만큼 일본 정부의 비판은 자기모순에 빠진 억지 주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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