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SNS 삭제지시 의혹', 봉합 방식은 '지극히 정치적'

입력 2017-08-13 17:20
경찰 'SNS 삭제지시 의혹', 봉합 방식은 '지극히 정치적'

김부겸 행안부 장관, 경찰 지휘부회의서 당사자들에 강력 경고

"국민 앞에서 사과하라" 직접 지시도…대국민 사과까지 발표

논란 과정서 '경찰청장 경질설'도…이날 계기로 수그러들 듯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임기창 기자 = 경찰 지휘부 내에서 벌어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 삭제지시 의혹' 논란이 13일 경찰청 직속 상급기관인 행정안전부 장관의 개입으로 일단 외견상 봉합되는 국면을 맞았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이 이날 긴급 경찰지휘부 회의에 참석해 이번 사태를 정리하는 모습에서는 유력 정치인 출신 장관다운 추진력과 분명한 언설, 여론에 호소력이 있을 만한 이벤트 등 정치감각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많다.

김 장관은 SNS 논란의 당사자로 회의에 참석한 강인철 중앙경찰학교장(치안감)이 "국민에게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는 입장문을 읽자 "국민 앞에서 사과하라"고 곧바로 지시했다. 강 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행안부가 경찰청에 대한 업무상 지휘권이 있는 상급기관이긴 하지만, 외청인 경찰청 조직 내에서 불거진 갈등에 행안부 장관이 나서 '상급자' 지위를 강조하며 직접 개입하고 지시하는 모습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 장관은 이날 모두발언 중 "오늘 이 시각 이후에도 불미스러운 상황이 되풀이되면 국민과 대통령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며 논란 당사자들에게 강력히 경고하기도 했다.

경찰 조직 내부 갈등에 관해 경찰청장이 아닌 행안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풍경도 펼쳐졌다. "12만 경찰이 한마음으로 반성하고 거듭나겠다"는 사과문 첫머리만 봐서는 낭독 주체가 경찰청장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사과문 낭독 후에는 논란 당사자인 이철성 경찰청장과 강인철 교장을 포함한 지휘부 5명과 함께 취재진 카메라 앞에서 고개 숙여 사과했다.

지휘부와 나란히 생방송 카메라 앞에 선 김 장관은 "차려! 국민께 대하여 경례!"라고 외치며 이번 사태 봉합을 위한 '정치적 연출'에 정점을 찍었다.

지난주 휴가를 다녀온 김 장관이 복귀 직후 이처럼 확고한 태도로 서둘러 논란 봉합에 나선 것은 정부 중요 국정과제인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이 이번 사태로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검찰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검찰을 견제할 다른 축인 경찰이 국민 신뢰를 받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만, 지휘부 갈등으로 경찰 안팎 여론이 동요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국정과제 추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7일 한 언론의 첫 보도로 촉발된 이번 논란은 이로써 일주일 만에 일단 정리됐다. 경찰로서는 수사권 조정 국면을 맞아 내부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을 가까스로 피한 셈이다.



이날 회의에서 논란 당사자들이 모두 사과와 반성의 뜻을 보인 만큼 당분간 이 사안이 물밑으로 가라앉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이 청장과 강 교장이 각각 검·경의 수사 대상이 된 상황이고, 별도 비위 혐의로 감찰조사를 받은 뒤 중앙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강 교장의 징계 절차도 남은 터라 언제든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될 가능성은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날 상황을 곱게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 업무 문제가 아닌 조직 내부 갈등에 행안부 장관이 개입해 마치 '초등학생 싸움에 어른이 훈계하듯' 하는 태도를 보여 경찰 자존심을 더 구겼다는 기류도 일부 감지된다.

행안부는 김 장관이 경찰 지휘부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것을 두고 '지휘권 발동' 차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지휘권 발동의 근거가 되는 법조항은 '정부조직법 제7조'다. 이 법규는 소속청에 대한 행정기관 장의 직무 권한으로, 중요 정책수립에 관해 해당 청의 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중요 정책수립에 대한 지휘권 행사 범위는 명확하지가 않다. 경찰 지휘부 간 SNS 게시글 삭제지시 논란을 해소하며 여러 지시를 내리는 것이 이같은 정책수립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놓고는 여러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행안부 내부에서는 이날 김 장관의 전체적인 행보를 놓고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상황의 중대성 때문에 직접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행안부 한 관계자는 "드문 상황"이라면서도 "중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국민 입장에서 중요한 상황이 생겼으니 장관께서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논란은 7일 한 언론이 '이 청장이 작년 11월 촛불집회 당시 광주지방경찰청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게시물을 문제 삼아 강인철 당시 광주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크게 질책하고 삭제를 지시했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이 청장이 당시 강 교장과 휴대전화 통화에서 해당 게시물에 포함된 '민주화의 성지, 광주' 문구를 언급하며 "민주화의 성지에서 근무하니 좋으냐"고 비아냥거렸고, 촛불집회를 폄하하는 발언도 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이 청장이 공식 입장을 내고 이를 부인하자 강 학교장이 반박하는 등 경찰 최고위직 간 진실공방 양상이 지속했고, 경찰 내부에서조차 '부끄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등 부정적 여론이 나왔다.

이날 김 장관 개입으로 이번 논란 과정에서 돌던 '경찰청장 경질설'도 일단 수그러들 것으로 전망된다.

김 장관은 이날 "이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지휘권 행사에 여러 고민을 하신 것으로 안다"면서도 "경찰에 다시 명예회복 기회를 주는 게 맞다는 참모 건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고 답해 이철성 청장 유임 가능성을 시사했다.

puls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