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가수' PD "무명들에게 잔인한 경연보단 기회주고 싶어"

입력 2017-08-12 10:00
수정 2017-08-12 10:03
'수상한 가수' PD "무명들에게 잔인한 경연보단 기회주고 싶어"

"복제가수 감정이입 놀라워…강호동·하현우·김종현, 프로 취지에 딱 맞죠"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금요일 밤 평균 시청률 2%대면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선방 중이다. 그러나 PD의 전작이 음악 예능의 대표격인 '복면가왕'이란 사실을 알고 나면 '당연히 아쉽겠네' 생각하게 된다.

tvN '수상한 가수'를 연출한 민철기(43) PD를 최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났다. MBC에서 이적한 후 내놓은 첫 예능의 성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닌데도 그는 편안해 보였다. 애초에 '대박 예능'보다는 '하나쯤 있어야 할 좋은 예능'을 의도했다는 게 민 PD의 설명이다.

"음악 프로들을 연출하면서 노래 잘하는 무명 가수를 참 많이 봤어요. 언젠가는 그들과 꼭 함께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사실 시청률을 높이려면 아이돌 오디션처럼 '잔인한 서바이벌'이 지름길이겠지만, 10년 이상을 무명으로 살면서도 겨우 꿈을 붙들고 사는 분들을 대상으로 못 그러겠더라고요. 큰 화제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이 프로를 통해 무명 가수들이 '메이저 방송'에 출연하고 대중이 한 번이라도 더 그들의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다면 성공한 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도의 프로라도 시청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민 PD도 현실적인 딜레마에 직면해 결국 대중의 눈을 조금이라도 더 붙들어 둘 수 있는 '복제가수'를 내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 위의 익숙한 얼굴을 통해 무명 가수의 이야기를 듣게 하고, 스타의 립싱크를 통해 무명 가수의 노래를 듣게 하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타협책'으로 내세운 복제가수들이 무명 가수들에게 '빙의'해 기대했던 이상의 몫을 해주고 있다고 민 PD는 설명했다.



"'소울 메이트' 같은 관계가 되더라고요. 배우 황보라와 정희주, 오승은과 강민희, 공형진과 파란의 에이스 등 많은 복제가수가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 무명 가수의 무대를 연습하고 진심으로 사연을 전해요. 자신의 무명 시절도 떠올리면서 감정이입을 하나 봐요. 둘의 상호작용을 보는 재미도 쏠쏠해지고 있어요."

그는 그러면서 "인위적인 '사연팔이'는 정말 싫지만, 출연 가수들의 사연이 워낙 가지각색이고 복제가수들도 몰입하니 자연스러운 감동이 연출된다"고 덧붙였다.

갓 5회 방송했지만, 이 프로를 통해 재조명된 무명 가수들을 지속해서 노출할 방법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패자부활전이나 왕중왕전도 고려하고 있어요. 일단은 소개하는 단계지만, 시청자들께서 원하신다면 나중에는 함께 모여 앨범을 내거나 콘서트를 하는 일도 가능할 거예요."



'수상한 가수'는 무엇보다 긴장 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매력이다. '수상한 가수'에는 아나운서 출신의 MC 김성주나 전현무가 없다. 대신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데다 말투부터 푸근한 강호동이 있다.

민 PD는 그를 MC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서도 "긴장되는 경연보다는 무명 가수의 사연을 전하고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프로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호동이 남의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준다"며 "과거 '무릎팍도사'를 함께했을 때도 대여섯 시간씩 게스트 이야기를 들어줘서 편집하다 지친 적도 있었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패널 하현우와 뉴이스트 JR(김종현) 역시 무명 시절이 길었기 때문에 출연 가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입에서 나오는 평가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평가를 한다고 민 PD는 강조했다.

민 PD는 대중성은 좀 떨어져도 무명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지키기 위해 기술적인 부분에도 신경이 많이 간다고 전했다. 그의 대표작인 '복면가왕'의 경우 가수가 가면을 벗는 순간부터 시청자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지만 '수상한 가수'는 복제가수가 물러나고 무명 가수가 나서는 순간부터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무명 가수에 포커스를 맞추면서도 시청자의 집중력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은 오롯이 민 PD의 편집능력에 달려있다.



그는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으면 한때 유명했지만 오랜 공백을 가진 가수들도 초대하고 싶다"며 "결국 '수상한 가수'를 통해 하고 싶은 얘기는 '꿈'과 '행복'"이라고 말했다.

"저도 오래 PD를 꿈꿨지만 서른에 겨우 합격했어요. 그때 떨어졌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미련을 갖고 살았을지도 모르죠. 대부분이 그렇게 살 텐데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들고 사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을 조명하는 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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