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폴란드 대립으로 난처해진 투스크 의장
EU 가치 수호와 조국 명예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상황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폴란드 우파 집권당의 사법부 장악 기도에 유럽연합(EU)이 민주주의와 법치 훼손으로 강력히 대응하고 나섬으로써 폴란드 출신의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EU 대표 기구의 한 수장으로서 당연히 EU가 추구하는 기본가치와 회원들의 단합을 촉구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총리를 지낸 조국 폴란드를 지나치게 매도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투스크 의장은 특히 오는 2019년 현 정상회의 상임의장 임기가 끝나면 폴란드 정계에 복귀해 2020년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여러모로 폴란드의 정치 상황과 국내 여론 등을 고려해야 하는 처지이다.
이 때문에 투스크 의장은 현재 폴란드 사태로 인해 그리스의 재정위기나 이민 문제 등 다른 EU 사안과 달리 그 자신 개인적으로 아주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고 있다고 정치전문 온라인 매체 폴리티코가 27일 지적했다.
현재 EU 집행위원회는 내외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사법부 장악을 위한 사법개혁을 강행하고 있는 폴란드에 대해 EU 투표권 제한 등 징계절차 착수를 경고하는 등 쌍방 관계가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브뤼셀 소재 싱크탱크 윌프리드 마르텐스 센터의 롤란드 프로이덴스타인 정책국장은 폴리티코에 "투스크 의장이 현재 아주 거북스러운 상황에 부닥쳐있다"면서 자신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으로서 EU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폴란드 정부와의 갈등을 악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고 전했다.
투스크 의장이 EU의 기준을 수호하기 위한 입장과 한편으로 국내의 정적들로부터 배신자로 찍히지 않기 위한 처신 사이에서 정치적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투스크 의장이 있는 EU 정상회의 본부에는 안드레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집권 법과정의당과 결별해 사법개혁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두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에 앞서 지난 20일 투스크 의장과 긴급 면담을 가졌으며 이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인 21일에는 수도 바르샤바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미 국무부가 경고 성명을 냈다.
투스크 의장은 두다 대통령에 현 사태에 대한 자신의 깊은 우려와 사태로 인해 폴란드의 평판이 손상을 입게 될 것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노조의 발상지인 그단스크 출신의 올해 60세의 투스크 의장은 1970년대 말 반공 학생연대에서 활동한 후 자유화 이후 폴란드의 가장 성공적인 정치인 가운데 한사람으로 성장했다. 폴란드의 민주화는 그의 평생의 사명이었다.
투스크 의장은 평소 EU 내에서 폴란드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데 신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재 폴란드 집권당 당수가 과거 자신과 정적관계였던 만큼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 때는 폴란드 언론 등을 통하고 있다.
투스크 의장은 현 폴란드 실권자이자 집권당 대표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로부터 지난 2010년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에 연루됐다는 비난과 함께 사법처리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폴란드 정부가 투스크 의장의 EU 상임의장 연임에 반대하면서 대체 후보를 내세웠으나 집권당은 국내적으로 큰 역풍을 맞았다.
국내 불화가 국제화되는 것을 폴란드인들이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다.
투스크 의장은 최근 폴란드의 EU 회원 박탈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정작 EU 내에서는 어떠한 박탈 위협도 나오지 않고 있다"면서 "EU 회원 박탈 가능성을 거론하는 사람들은 바로 바르샤바의 길거리가 아닌 사무실에 만난 관리들"이라고 지적했다.
투스크 의장을 잘 아는 폴란드의 한 고위 외교관은 "현 사법개혁 논란은 EU와 특히 투스크 의장 개인에게 골칫거리"라면서 투스크 의장 개인에게는 정서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조국의 평판이 손상되는 데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폴란드 정부와 협의 중인 EU 집행위원회 관리들도 투스크 의장 때문에 사태가 복잡해지지는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투스크 의장의 견해가 EU의 다른 지도자들이나 집행위의 공식 입장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yj378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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