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참여 늘리고 진술 녹음·녹화제…인권경찰 첫발 뗀 경찰
외부 권고 전향적 수용의지 밝혀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경찰개혁위원회가 19일 경찰에 권고한 '인권친화적 수사제도 개선안'은 그간 경찰의 수사 관행에 비춰보면 꽤 전향적인 수준의 변화로 평가된다.
개혁위 권고안은 ▲ 변호인 참여권 실질화 ▲ 영상녹화 확대 및 진술녹음제 도입 ▲ 장기 내사·기획수사 일몰제 도입 3가지다. 경찰청은 이들 권고안을 모두 적극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개혁위는 정식 수사는 물론 이전 단계인 내사 시점부터 변호인 참여권을 보장하고, 이를 관련 법령과 내부 지침에 구체적으로 규정하라고 권고했다.
수사 과정에서 변호인 참여권은 지금도 보장되지만, 일선의 수사 담당자들이 자의적으로 참여 범위를 제한하는 등 실무적으로는 권리 보장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예컨대 변호사를 선임한 피의자에게 "변호인 선임비용을 차라리 피해자와 합의금으로 쓰라"고 말하거나, 실제 조사 과정에서 변호인 동석을 거부하는 등 수사관들이 처음부터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사례가 있었다.
변호인이 향후 변론을 위해 조사 내용을 메모하려 하면 이를 제지하고, 질문 핵심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하거나 변호인이 피의자 답변을 보충하고자 개입하려 할 때 정당한 사유 없이 제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개혁위 권고안에는 ▲ 변호인과 사전에 조사 기일 협의 ▲ 의뢰인 옆에 변호인 좌석 마련 ▲ 의뢰인과 변호인 간 소통 기회 보장 ▲ 조사 과정 기록 허용 ▲ 조사 내용에 관한 변호인의 의견 진술 허용 ▲ 이의제기 보장 등 내용이 담겼다.
일선에서는 이런 수준까지 변호인 참여를 허용하면 실무적으로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경찰청은 그보다는 편파수사 시비를 없애는 등 순기능이 더 많을 것이라는 판단에 개혁위 권고를 전격 수용했다.
권고안에는 현재 피의자나 참고인 조사에 쓰이는 진술녹화의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음성만을 녹음하는 진술녹음제를 새로 도입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금도 체포·구속 피의자, 살인·성폭력·뇌물·선거사범, 성폭력 피해자 중 아동·청소년이나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을 조사할 때는 의무적으로 영상녹화를 하도록 규정돼 있다.
개혁위는 녹화 대상 범죄 범위를 종전보다 확대하고, 인권침해 시비가 예상되거나 조사 대상자가 녹화를 요청할 경우에도 진술을 녹화하라고 권고했다.
다만 현재 진술녹화 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수요를 맞추기 어려운 점을 고려,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게 드는 진술녹음제를 새로 도입하도록 했다.
개혁위는 영상녹화하지 않는 모든 사건에서 의무적으로 진술을 녹음하고, 녹화·녹음이 조사의 전 과정을 담도록 해 회유나 자백 강요 등 잘못된 신문 관행이 이어질 소지를 차단하라고 경찰에 권고했다.
경찰은 진술녹음의 경우 그간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도입을 보류한 채 장기 과제로 검토해 왔다. 그러나 조사 대상자 인권보호에 도움이 되는 제도는 적극 시행하는 쪽이 옳다는 판단하에 권고를 수용했다.
범죄 첩보의 기초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내사나 경찰이 자체적으로 첩보를 입수해 진행하는 인지(기획)수사에 '일몰제'를 둬 기간을 제한한 것은 무한정 길어지는 수사로 당사자들이 받는 고통을 줄여주자는 취지다.
고소·고발된 사건은 접수일부터 2개월 안에 수사를 끝내도록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수사기관의 내사나 인지사건 수사는 기간 제한이 없다.
개혁위는 원칙적으로 내사는 6개월, 인지수사는 1년이 경과하면 사건을 종결하되, 새로운 증거가 나오는 등 예외적 상황에서만 상급기관 심사를 거쳐 수사를 계속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경찰에 권고했다.
이처럼 수사 기간을 제한하면 일선 경찰의 적극적인 인지수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요건에 부합할 경우 심사를 거쳐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만큼 내용이 충실하다면 큰 우려는 없으리라는 것이 경찰청 판단이다.
경찰은 9월까지 장기사건을 전수조사해 지속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건은 종결 처리하고, 올해 안에 일몰제의 구체적 추진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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