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두테르테 강권통치 길여나…대법원 "계엄령 선포 합헌"
IS 추종세력 소탕 내세워 권한 강화…인권침해·독재부활 우려 제기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필리핀 대법원이 4일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추종 세력 소탕을 내세운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 발동한 계엄령과 관련, 의회에 이어 대법원의 지지까지 받음에 따라 테러범 소탕을 명분으로 더욱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인권 침해와 철권통치에 대한 야권과 인권단체의 우려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이날 대법권 15명의 표결 결과 11대 4로 두테르테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무효화시켜달라는 청원을 기각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대통령궁은 공통의 적에 맞선 단합을 보여주는 판결이라고 환영했지만 대법원 밖에서는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인권·시민단체의 시위가 벌어졌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IS 추종 반군 '마우테'가 지난 5월 23일 민다나오 섬의 마라위 시를 점령하자 필리핀 전체 국토 면적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인구 2천만 명의 민다나오 섬 전역에 계엄령을 발동하고 토벌 작전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마라위시에서 460명 이상의 반군, 정부군, 민간인이 숨졌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마라위 시 사태가 정부군의 테러범 체포 작전과 반군의 저항에서 비롯된 무장 충돌로, 헌법상 계엄령 발동 요건인 반란이나 침략으로 볼 수 없다며 대법원에 백지화를 청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1972∼1981년 계엄령을 실시,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며 인권 유린을 일삼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야권과 인권단체에 의해 제기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5월 말 계엄령 지역에서 군인들이 여성들을 성폭행해도 좋다는 농담을 했다가 인권·여성단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는 계엄령 해제 문제와 관련, "나는 다른 누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과 의회는 여기에 없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헌법상 누구의 청원이라도 들어오면 계엄령의 적법성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대법원의 권한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또 의회는 다수결로 계엄령을 백지화하고 처음 60일로 제한된 계엄령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에 IS 위협이 확산하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으며 군과 경찰이 안전하다고 판단할 때 계엄령을 해제하겠다고 공언했다.
의회가 이미 계엄령 지지를 선언한 가운데 대법원도 여기에 가세함에 따라 두테르테 대통령이 계엄령 기간을 연장하거나 계엄 지역을 확대하는 데 법적인 걸림돌이 사라진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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