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 발가락부터 먼저 살폈던 살신성인 중대장님"
고 정경화 소령 40년째 추모하는 백암산 패밀리 회원
(춘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늘 약자 편에 섰던 중대장님의 전우애를 이 땅에 남기고 싶습니다."
40년 전인 1977년 6월 21일 강원 화천군의 최전방 백암산 자락.
육군 7사단 5연대 3중대장이었던 정경화 대위는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제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 북한이 땅굴을 파는 소리가 난다는 첩보가 제기돼 상급부대는 수색대를 투입하고자 시야를 가리는 나무를 베라는 명령을 내렸다.
중대장은 고참 병사 위주로 지뢰제거 작업에 투입하고, 지뢰가 발견되면 전투식량인 시레이션 깡통으로 덮어두도록 하고 나서 자신이 직접 대검으로 지뢰를 제거했다.
순탄하게 이뤄지는 듯한 지뢰제거 작업은 3일째 뜻하지 않았던 사고로 연결됐다.
정 대위는 23번째 지뢰를 제거하던 중 안전핀이 부식돼 부러지자 자신의 몸으로 지뢰를 덮쳐 부하들의 희생을 막았고, 춘천으로 이송 중 순직했다.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그 날 중대장을 잃은 사고 현장에는 하늘도 슬퍼하듯 한차례 소나기가 내렸다.
이후 슬픔에 젖어 있던 부대원들은 사고 현장에 순직비를 세웠다.
전역 후 전국에 흩어져 살던 병사들은 '백암산 패밀리'라는 민간단체를 만들고, 중대장의 동상을 건립하는 등 자발적으로 추모 활동에 나섰다.
특히 백암산 패밀리는 중대장의 죽음이 '안전 사고사'로 잘못 처리된 점을 발견하고 국방부 등에 사건 재조사를 요구해 15년 만인 1992년 '작전 도중 부하를 위한 희생'으로 인정받아 일 계급 추서되도록 했다.
이들이 십시일반 격으로 돈을 모아 추모 행사를 매년 여는 것은 부하를 위한 희생 못지않게 인간미 넘치던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29살이었던 중대장은 부대원이 잘못할 때는 엄하게 혼을 내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중대장은 부하들에게 시켜도 되는 일을 솔선수범하고, 약자 편에 서는 맏형과도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는 이등병의 발가락 냄새부터 맡아보며 부대원들 위생 상태를 챙겼고, 눈보라 치는 겨울에는 앞장서서 뛰었다.
일선 부대에 내려오는 부식을 이곳저곳에서 빼먹다 보니 늘 배고팠던 부대원을 위해 자신의 봉급으로 양 1마리를 사서 기르기도 했다.
중대장은 생일을 맞은 부대원을 따로 불러 애로 사항을 묻고, 양젖을 짜서 먹였다.
휴가를 가는 부대원에게는 어머니께 고무신을 사드리라고 1천원을 쥐여 줬다.
당시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최전선의 생활은 열악하고, 먹을 것이 보잘것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이등병이었던 정문식(63) 회장은 전역 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매년 추모제를 이끌고 있다.
그는 다음 달 8일에는 정 소령의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현지에서 '고 정경화 소령 40주년 추모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또 이곳에서 근무하는 부대원에게는 도서 700권을 전달할 계획이다.
회원들은 정 소령의 순직일인 매년 6월 21일에 추모제를 개최했으나 올해는 6·25전쟁 발발 67년을 맞아 통일 훈련이 예정돼 연기했다.
정 회장은 함께했던 회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정 소령에 대한 관심도 점점 잊히는 듯해 안타깝기만 하다.
추모 행사를 할 때도 정 소령의 추모보다는 현지 군부대 지휘관 등에 대한 예우에 더 신경을 쓰는 등 주객이 바뀌는 상황도 적지 않아 답답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그는 새 정부가 출범한 올해는 이 같은 나쁜 관행이 사라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 회장은 "부대원들이 아직도 중대장님을 기리는 것은 부하들의 목숨을 위해 순직한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으로 훌륭했기 때문"이라며 "중대장님이 혈연보다 더 가까운 전우애를 보여줬고 이를 잊지 못해 지금까지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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