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비혼 여성들…신간 '싱글 레이디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서구사회에서 '원조' 비혼 여성은 영국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다. 정치외교적 성격도 지닌 혼담이 여러 차례 오갔지만 끝내 결혼을 거부했다.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 간곡히 결혼을 청원하는 의회에 여왕이 한 말이다. "나는 남편이라는 주인을 두지 않은 한 여성으로서 여기에 있겠다"고도 했다.
결혼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던 시대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성들은 독신으로 남은 경우가 많다. 자매 작가 앤·에밀리 브론테, 시인 에밀리 디킨슨, 최초의 여의사인 엘리자베스·에밀리 블랙웰 자매,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그렇다.
미국 저널리스트 레베카 트레이스터는 "의지적으로 독신을 고수한 여성은 결혼한 여성보다 훨씬 더 자신의 운명을 잘 개척할 수 있고 특별한 경우 역사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말한다. 그는 신간 '싱글 레이디스'(북스코프)에서 편견에 맞서 삶을 개척한 역사 속 독신여성들을 조명하고 오늘날 이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까지 갖게 됐다고 분석한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싱글 여성의 67%가 버락 오바마에게 몰표를 던지며 그를 백악관에 재입성시켰다. 기혼 여성은 미트 롬니에게 더 많은 표를 줬다. 보수 진영은 전통적 가족관계에서 멀리 떨어진 독신 여성들의 존재감을 두려워한다. "사회적·정치적 파열을 알리는 결정적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혼인율은 가파르게 떨어지고 결혼 연령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비혼·만혼 경향은 더 나은 짝을 만날 가능성을 높여 결과적으로 결혼의 질을 높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결혼을 덜 하거나 늦게 하는 뉴욕·매사추세츠·뉴저지·펜실베이니아 등지의 이혼율이 미국에서 가장 낮다는 게 증거다. 이혼한 여성이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은 여성보다 더 건강하지 않고 더 가난하다는 연구결과까지 놓고 보면 결혼을 미루거나 끝까지 비혼으로 남는 게 나쁠 건 없다.
나이가 많을수록 임신이 어려워지고 아이에게 발달장애나 자폐증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저자도 인정한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과 가정을 함께 챙기기 어려운 사회구조에서 꼭 아이를 낳아야할까. 저자는 "여성이 이 세상에 자취를 남길 방법은 수백만 가지가 있고 아기는 그중 하나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빨강머리 앤'의 앤 셜리나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처럼 결혼으로 인생을 완성하고 이야기가 끝나는 시대는 지났다. 2012년 버락 오바마 캠프는 줄리아라는 이름의 여성 캐릭터가 인생의 주요 지점에서 정부 지원을 받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제작했는데 결혼은 포함되지 않았다. 서른다섯 살에 결혼했다는 저자는 비혼여성과 싱글맘을 격려하고 정책 결정권자에게는 이들에 대한 배려를 요구한다.
"싱글로 사는 것이 커플로 사는 것보다 그 자체로 더 낫거나 더 바람직해서가 아니다. 이것을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선택권이 확장되었으며 필수 의무가 바뀌었다는 데 있다. (…) 사랑, 섹스, 동반자 관계, 부모 되기, 일, 우정 같은 요소들을 자기 식대로 조합해 각자의 속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노지양 옮김. 504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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