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인생플랜]⑤ '통기타'로 내 안의 보화를 캔다

입력 2017-07-01 09:00
수정 2017-07-17 14:51
[100세 시대 인생플랜]⑤ '통기타'로 내 안의 보화를 캔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은퇴자들 제2 인생 '통기타 밴드' 결성

은퇴 베이비 부머 뮤지션 12명 "금광은 산이나 강에만 있지 않다"

(부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25년 동안 잘 나가는 '사장님'이었던 정중구(65)씨. 그가 4년 전부터 통기타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됐다.

정씨의 통기타 밴드는 2013년 은퇴한 50∼60대 지인 4명으로 시작됐다. 밴드는 4년 새 12명 규모의 대형 시니어(Senior) 밴드로 성장했다.

숲 해설가, 합창단 지휘자, 공무원, 대기업 직원, 전통시장 총무 등 각양각색의 일터에서 물러나 제2의 인생을 찾아온 평범한 은퇴자들이다.



"1983년부터 자영업만 해 오다가 문득 생각해보니 남들에게 도움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더라고요. 이 깨달음을 어떤 일로 연결해야 하나 고민했죠."

경기도 부천에서 레저스포츠 용품점을 운영해온 정씨가 기타리스트로 변신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25년 넘게 운영해온 가게를 접기로 했다. 쉰이 훌쩍 넘은 나이에 어렵게 내린 결단이었다.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아무런 경력이 없는 정씨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다 자신의 이력서를 받아준 부천문화재단과 연을 맺게 됐다. 정규직은 아니었지만 1년가량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정씨는 이 경력을 살려 부천 시민학습원에서도 2년 넘게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했다. 다양한 문화 교육을 받으러 온 주민들에게 교육실이나 대강당을 대관해주고 음향 장비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자연스레 음악이나 영화 무료 강의를 접했고 강사들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됐다. 통기타 실력을 키워 예술 재능 나눔 단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키운 것이 이때부터다.

"문화재단과 시민학습원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사적인 이익이 아닌 공적인 이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그때 어릴 적 배운 통기타로 재능 나눔을 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그는 예순 나이에 기타 학원과 유명 대학 음대를 찾아다니며 통기타 레슨을 1년 넘게 받았다. 은퇴한 지인들과 함께였다.

"주변에서는 그 나이에 갑자기 기타를 왜 배우느냐고, 남들한테는 어찌 가르치느냐고 면박을 줬죠. 돈 되는 일도 아닌데 가게까지 접고 왜 그러냐고요."

'포 가이즈(Four guys)'로 시작한 밴드는 운 좋게도 점점 멤버가 늘었다. 결국 '포 가이즈'가 아닌 '해피 가이즈(Happy guys)'로 이름을 바꿨다.

사람들에게 늘 행복하고 즐거운 음악을 들려주자는 의미를 담았다.

때마침 부천시 인생 이모작 지원 센터에서도 밴드 연습실과 매달 일정한 지원금을 지원해줬다.

매주 3시간 남짓 단체 연습을 3년 넘게 이어온 해피가이즈는 클래식과 어쿠스틱 기타, 하모니카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한다.

'기타를 정말 잘 치는 학생이 있는데 지도할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초등학교 5학년생을 3년 넘게 가르쳤다.

함께 공연도 했다. 이 학생 말고도 다른 초·중학생 3명에게도 기타 무료 강습을 하고 있다. 주말에는 부천에 있는 경로당과 홀몸노인의 집을 찾아 무료 공연을 하고 있다.

해피 가이즈의 최종 목표는 '시니어 밴드'를 대표하는 밴드가 되는 것이다.

은퇴한 베이비 부머 세대도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정씨는 어르신들이 기타 리듬에 맞춰 어두웠던 얼굴을 펴고 신명 나게 박수를 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여든 살도 넘은 할머니께서 기타 소리에 노래를 흥얼거리시는 모습을 볼 때 벅찬 보람을 느끼죠."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경로당 노인들을 대상으로 통기타로 배우는 실버 동요 교실도 따로 운영하고 있다. 계속 강습 기회를 늘려 부천에 있는 모든 경로당 노인들에게 통기타를 가르치는 게 정씨의 꿈이다.



그는 이 꿈을 실현하고자 부천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거점 경로당 프로그램 관리사'에도 지원해 뽑혔다.

복지관과 경로당을 합친 거점 경로당은 노래방 기기나 운동 기구 등 각종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갖추고 노인들에게 색다른 교육을 제공한다.

정씨가 하는 일은 경로당 어르신들의 의견을 듣고 맞춤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짜는 일종의 '코디네이터'다. 거점 경로당 관리사는 베이비 부머들을 주로 뽑는데 경쟁률도 치열했다. 올해도 14명을 뽑는 데 97명이 몰렸다.

정씨는 "거점 경로당이야말로 어르신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데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다"며 "해피 가이즈의 목표와도 맞닿아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앞으로도 시간을 쪼개 해피 가이즈와 거점 경로당 관리사 활동을 함께 해 나갈 생각이다.

정씨는 "가게를 운영하던 시절 나와 내 가족만 생각했다면 시니어 밴드를 하는 지금에야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했다.

"금광은 산이나 강에만 있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보화를 캐내야 합니다."

cham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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