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사 복원·도종환 역사관 놓고 역사학계 '시끌'

입력 2017-06-11 07:55
수정 2017-06-11 10:19
가야사 복원·도종환 역사관 놓고 역사학계 '시끌'

"정치는 역사에 개입 말라" 한목소리…"차분한 대응" 주장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역사학계가 또다시 부산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복원 지시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역사관을 놓고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 개진이 이어지고 있다.

두 사안이 불거진 뒤 역사학자들은 한목소리로 "정치적 판단에 의한 역사학 간여는 학문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통적으로는 정치와 역사가 얽히는 것이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지만, 두 사안에 대한 학계의 태도는 온도차가 있다.

가야사 복원을 둘러싸고는 그간 소외되고 지체됐던 가야사 연구가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과 체계적 연구 없이 무리한 발굴과 복원이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큰 틀에서 가야사 복원이라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성과주의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일식 연세대 교수는 한국고대사학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역사의 특정 시기 연구를 대통령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하면서도 "역사학과 고고학계 일부는 환영하고, 일부는 갸우뚱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야사는 신라, 고구려, 백제에 비해 기록이 매우 부족하고 일본이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영향으로 연구가 부진했지만, 1970년대 이후 발굴조사를 통해 많은 유물이 출토되면서 재조명됐다. 순천, 남원 등 전라도 동부의 섬진강 권역이 한때 가야의 땅이었다는 사실은 최근의 연구를 통해 드러난 성과다.

그러나 고대사를 '삼국시대'로 보는 시각으로 인해 가야사는 일반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고, 가야는 여전히 변방으로 취급됐다.

학계에서는 정부가 학자들의 가야사 연구를 지원하되 지자체에 예산을 할당해 경쟁적으로 발굴과 건물 복원을 지시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장기적으로 가야사를 공부할 신진 연구자를 많이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보여주기식 연구와 치적 만들기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종환 후보자 역사관 문제는 지난해부터 수면 위로 드러난 주류사학계와 재야사학계의 갈등과 관련돼 있다.

그동안 재야사학계는 주류사학계를 향해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공격해 왔다. 이러한 비난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주류사학계는 작년부터 토론회와 시민강좌를 열고 다양한 책을 펴내며 재야사학계를 '사이비역사학', '유사역사학'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주류사학계는 도 후보자가 의원 시절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재야사학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동북아역사지도 사업'과 '하버드대 한국고대사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는 데 기여했고, 민족주의 사관에 물든 재야사학자들을 국회로 초청해 목소리를 높일 기회를 줬다고 보고 있다.

심재훈 단국대 교수는 도종환 의원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나친 민족주의와 이에 따른 유사역사학에의 동조 혹은 가담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했고, 하일식 교수는 "여야 의원이 역사학계를 식민사학에 찌든 카르텔로 낙인찍었을 때 그 중심에 도 의원이 있었다"고 날을 세웠다.

이에 대해 재야사학자들의 모임인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협의회'는 "주류사학계가 도 후보자에게 도를 넘은 공격을 하고 있다"며 "식민사관 카르텔이 준동한다면 성역 없이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반발했다.

양측의 대립은 도 후보자가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에서 임나를 가야라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을 쓴 국내 역사학자들의 논문이 많다"며 재야사학계의 의견에 동조하는 발언을 했다는 한 언론보도로 폭발하는 듯했으나, 8일 도 후보자가 입장문을 통해 "특정 학설을 일방적으로 주장할 생각이 없다"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다소 수그러드는 모양새다.

다만 주류사학계는 14일로 예정된 도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그의 역사관을 검증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역사학자는 "도종환 후보자가 권력의 힘으로 역사연구와 교육의 자율성을 훼손할 의도가 없다고 한 만큼 일단 상황을 지켜보면서 차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도 후보자만 비난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유사역사학의 오류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