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특유 '의료집착' 버려야 웰다잉 정착한다"

입력 2017-06-06 06:13
"한국인 특유 '의료집착' 버려야 웰다잉 정착한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 대한의사협회지 시론서 지적

"가정 간병문제는 지역 중심 의료체계로 해결해야"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제대로 정착돼 '웰다잉'을 실현하려면 한국인 특유의 '의료집착' 문화가 먼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6일 대한의사협회지 최근호에 따르면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제도의 정착과 확산을 위한 대응전략'이라는 시론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웰다잉' 전문가인 허대석 교수는 서울대병원 호스피스실장, 암센터 소장,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장, 한국임상암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허 교수는 이 글에서 매년 20여만명의 만성질환자가 고통을 받으며 사망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려고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후속법안의 미비로 또 다른 규제입법처럼 변질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연명의료중단 결정이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에까지 확대 적용되는 것을 우려해 (그 대상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국한함으로써 연명의료 결정을 제한했다"면서 "정부가 나서 법안이 잘못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을 시행령·시행규칙으로 정비하지 않는다면, 기존 호스피스·완화의료마저도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이어 말기 환자들이 임종 전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의료에 의존해 중환자실에서 보내는 '의료집착적' 문화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법만 시행된다면 근본적인 웰다잉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후 1989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이 확대 적용되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쉽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면서 "이 과정에서 임종장소가 가정에서 병원으로 이동해 지금은 전 국민의 74.9%가 의료기관에서 사망하고 15.3%만 집에서 임종한다"고 말했다. 암환자만 보면 89.2%가 병원에서 임종하고 있다.

허 교수는 "병원의 경우 환자나 그 가족은 끝없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의료서비스에 집착하고, 의료진들은 의료분쟁의 위험을 피하고자 방어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임종 전 마지막 2∼3개월을 가족들과 생을 마무리하는 시간으로 보내기보다 중환자실에서 보내는 관행이 그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도 환자나 그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간병문제'를 꼽았다. 심한 통증과 같은 의료문제를 현재의 의료제도에서는 가정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허 교수는 환자가 집에 있어도 의료진들이 왕진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지역 중심 의료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허 교수는 "가정에서 편한 임종을 맞이하길 원하는 대부분 국민의 여망이 수용되려면 의료진들이 왕진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의료전달체계가 개선돼야 한다"면서 "한 인간으로서 삶을 잘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연명의료에 매달리는 한국인의 임종문화는 변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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