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우박에 농작물 쑥대밭 농민 한숨만

입력 2017-06-06 09:30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우박에 농작물 쑥대밭 농민 한숨만

사과 열매 떨어지고 고추 모종 부러지고…경북 6천600여㏊ 피해

"마땅한 대체작물 없어 올해 농사 포기"…농작물 보험 미가입 농가 발동동



(영주·봉화=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올해 농사는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 우곡리에서 농사를 짓는 정돈교(68)씨는 요즘 우박이 망친 과수원 앞에서 한숨만 짓고 있다.

지난 1일 쏟아진 지름 3㎝ 안팎 우박으로 사과밭 0.6㏊가 엉망이 됐다.

550그루 사과나무 가운데 피해가 나지 않은 것은 한 그루도 없다.

모든 나무에서 열매와 꽃눈, 잎이 떨어졌다. 열매는 적과(열매솎기)를 앞둔 것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적과를 마치고 봉지까지 씌운 것들이다.

그나마 낙과를 피한 열매는 멍들거나 깨져 상품성이 없게 됐다. 상당수 나무에서 가지가 부러졌다.

열매가 떨어진 것은 올해 농사에만 영향을 끼친다. 그렇지만 꽃눈이 떨어지면 앞으로 2∼3년 정도 작황에 영향을 끼친다. 가지가 심하게 부러진 나무는 말라 죽기 전에 치료해야 한다.

사과밭뿐 아니라 얼마 전 모내기를 마친 논에서도 모 잎이 찢어지는 피해가 생겼다. 하지만 사과밭 상태가 워낙 엉망이라 논을 돌볼 겨를이 없다.

게다가 우박 피해 발생 지역이 워낙 넓어 피해 복구에 필요한 일손을 구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정씨는 그나마 농작물 보험에 가입해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당수 농가는 발만 구르고 있다.

영주 사과 농가 3천200여곳 가운데 절반을 겨우 넘긴 1천754곳이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시는 파악하고 있다.

영주, 봉화, 영양, 안동 등 경북 북부 대부분 시·군 사과 농가가 같은 피해를 봤다.

경북도가 잠정 집계한 사과 피해 면적은 2천800여㏊로 전체 피해 6천600여㏊의 40%가 넘는다.



호박, 가지, 상추, 브로콜리 등 시설원예작물 농가 피해도 심각하다.

영주 부석면 상석리에서 호박과 가지를 재배하는 김용(53)씨도 농사를 망쳤다.

지난 2월 파종해 틔운 싹을 3월 6천600여㎡ 밭에 증식한 뒤 비닐을 덮어 서리를 막아가며 애지중지 키운 애호박, 주키니, 가지 등이 쑥대밭이 됐다.

김씨 밭처럼 대부분 시설원예작물은 막 수확을 시작했거나 수확을 코앞에 두고 우박을 맞았다. 이 바람에 다른 작물보다 농민 허탈감은 더 크다.

엉망이 된 밭을 보며 한숨만 쉬고 있기에는 피해가 너무 커 김씨는 일부 작물은 뽑아내고 다시 파종하고 있다.

잡초가 자랄 가능성은 크나 일손이 모자라 비닐은 봄 파종 때 사용한 것을 그대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나마 우박을 적게 맞은 작물은 밭에 남겨 두고 지켜볼 작정이다. 혹시나 다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상태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씨 등 피해 농민이 이런 기대를 하지만 우박을 맞은 작물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을 못 한다.

봉화군 재산면 현동리 4천㎡에 수박 농사를 짓는 정동철(75)씨는 올해 수확을 사실상 포기했다.

지난 1일 우박이 내릴 때 돌풍이 함께 불어 수박 재배를 위해 설치한 비닐하우스가 부서졌다.

하우스 철골이 돌풍에 휘면서 비닐이 찢어져 안에서 자라던 수박은 비와 우박을 맞았다. 수박은 생장 도중 외부 바람에 노출되거나 비에 젖으면 수확할 수 없다.

정씨는 지난 4일 경북도청 공무원들 도움으로 휘어버린 하우스 철골, 수박 넝쿨 등을 제거했다.

수박 농사를 포기했으나 여름에 접어들기 시작해 마땅한 대체작물을 구할 수도 없다.

990㎡ 고추밭도 모종 대가 부러지거나 잎이 떨어지는 피해가 생겼다.

봉화군 상운면 하눌2리 이모(54)씨 4천100여㎡ 사과밭과 고추밭도 망가졌다.

이씨는 지난 5일 봉화군청 재정과 공무원들 도움을 받아 고추 모종을 새로 심었다.

우박을 맞아 구멍이 뚫린 멀칭 비닐을 모두 벗겨냈다. 고랑을 따라 새로 멀칭 비닐을 덮고 어렵게 구한 모종을 심었다.

고추 농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지만 바로 옆 사과밭은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열매나 꽃눈이 떨어진 것뿐 아니라 상당수 사과나무는 외피가 벗겨지는 피해가 생겼다. 외피가 많이 벗겨진 나무는 대부분 죽기 때문에 베어내야 한다.

이씨 밭에서 지난 5일 일손 돕기를 한 강종구 봉화군 재정과장은 "우박이 지나간 봉화 전역에 일손이 매우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담배, 인삼, 수박 등 밭작물과 벼 등도 잎이 찢어지는 피해를 봤다.

특히 담뱃잎은 구멍이 나면 수확을 할 수 없다. 새로 파종을 하는 것도 불가능해 봉화, 영주 등 110여㏊에 담배를 재배하는 농민은 구멍 난 잎을 떼어내고 같은 뿌리에서 새잎이 돋아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경북도 잠정 집계에 따르면 우박 피해는 봉화가 3천386㏊로 가장 넓고, 영주 1천695㏊, 문경 639㏊, 영양 568㏊, 의성 110㏊ 등이다.

시·군 공무원이 정밀히 조사하고 있어 피해 면적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경북 북부에서는 지난 1일 오후 영주, 봉화, 의성, 영양 등에 지름 3㎝ 안팎 우박이 돌풍을 동반한 비와 함께 내렸다.



lee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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