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로 범행 밝힌다'…보이스피싱 음성자료에 '덜미'

입력 2017-05-18 11:30
'목소리로 범행 밝힌다'…보이스피싱 음성자료에 '덜미'

경찰 "심리적 위축으로 범행 감소…과거 범행도 밝혀낼 것"

(홍성=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영구미제로 묻힐 뻔한 성폭행 사건의 범인이 10여년 뒤 유전자(DNA) 분석으로 붙잡히는 일이 종종 있다.

지난해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 피의자 중 한 명인 김모(39)씨가 9년 전에도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사실도 DNA 분석이라는 수사 방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씨는 DNA 분석으로 2007년 1월 대전시 서구에서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까지 추가됐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서 용의자 DNA를 채취했지만, 피해자와 안면이 없었던 용의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미제로 남았다.

그러나 여교사 성폭행 사건으로 김씨의 DNA와 신상 정보를 확보하면서 여죄를 밝혀냈다.

18일 충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발표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 과정에서도 DNA 분석처럼 목소리 분석을 통해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과거 범행을 밝히는 수사 기법이 사용됐다.

경찰이 중국 톈진(天津)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보이스피싱 행각을 벌인 혐의로 A(38)씨 등 34명을 붙잡은 것은 지난달이다.

이들은 지난해 7월부터 6개월 동안 검사나 금융기관 관계자 등을 사칭해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줄 테니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라'거나 '범죄 현장에서 당신의 통장이 발견됐으니 통장 잔고와 범죄 연관성을 수사해야 한다'고 속여 돈을 가로챘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돈을 뜯긴 사람은 확인된 것만 107명이고, 피해 금액도 6억원에 달했다.



경찰은 그러나 이들의 출입국 내용을 조사하던 중 일부 조직원이 2013년부터 수시로 중국과 한국을 오간 점을 수상히 여겼다.

이들이 중국을 오간 시점부터 보이스피싱 범행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관련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금융감독원이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실제 목소리를 보이스피싱 지킴이 홈페이지(phishing-keeper.fss.or.kr)에 올려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화한 '그 놈 목소리'에 주목했다.

경찰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이나 금융기관 사칭 보이스피싱 등 3천여개의 음성 파일을 실제 붙잡힌 피의자들의 목소리와 비교 분석해 20여건의 비슷한 음성을 찾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고, 20건의 음성이 이들의 목소리와 매칭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의심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 애를 태웠던 이들의 과거 범행까지 특정한 셈이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공개한 금융사기범의 음성자료를 이들의 추가 범행 여부를 밝혀내는 데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과 금융감독원은 앞으로도 금융사기범의 음성자료를 활용해 이들의 과거 범행 여부를 밝혀낸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검거된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목소리를 금융사기범 음성자료와 연계해 과거 범행 여부를 자동으로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세호 충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금융감독원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홍보 활동과 함께 피해자들이 통화 녹음 자료를 신고하도록 유도하겠다"며 "확보된 자료에 대해 과학적 분석 실시해 수사에 적극 활용하는 등 유관기관 간 공동 대응체제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jkh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