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지내 미안해"…또래들이 만든 추모영상 '잔잔한 감동'

입력 2017-04-14 07:30
수정 2017-04-14 11:21
"잊고 지내 미안해"…또래들이 만든 추모영상 '잔잔한 감동'

전국 청소년 대상 세월호 추모영상 공모…17개 작품 공개

"일상 속에서 세월호 이해하고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

(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 "나는 아직 기억해, 그리고 기다려"

방과 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 승준이는 친구 4명과 함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올라 16층 버튼을 누른다.

들뜬 학생들의 웃음소리는 금세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운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작동을 멈추고 내부엔 정적이 흐른다.

이내 다시 작동하는 엘리베이터에 친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승준은 '이런 적 없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장난기가 발동한 친구들은 '겁먹은 거냐'며 승준이를 7층에서 내리게 한 뒤 16층에서 만나자고 한다.





승준이는 계단으로 먼저 뛰어 올라갔고, 뒤이어 도착한 텅 빈 엘리베이터엔 친구들 대신 책가방과 교복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승준이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을 그 자리에서 친구들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경기도교육청 세월호 기억 영상 공모전 상영작 중 '엘리베이터')



청소년들이 기억하는 세월호 참사는 어떤 모습일까.

경기도교육청은 최근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두고 전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추모 영상 공모전을 벌였다.

한 달이란 길지 않았던 공모 기간 276편에 달하는 작품이 제출될 정도로 많은 학생이 세월호 추모 영상에 관심을 보였다.

뮤직비디오, CF, 미니다큐멘터리, 영화 등 장르는 다양했지만, 학생들이 손수 만든 모든 영상에는 3년이란 시간만큼 무뎌진 참사의 아픔을 떠올리며 미안해하는 마음과 잊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겼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한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또래인 이들은 저마다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며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마치 제 일처럼 여겼다.

2014년 4월 16일 단원고 학생들이 탄 세월호가 먼저 출항한 이후 뒤이어 또 다른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던 부천 원미고 학생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미니다큐멘터리 '우리 학교에는 한 소문이 있습니다'는 일상에 치여 참사를 잊고 지내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며 쓴소리를 던진다.

담담한 목소리의 내레이션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6분가량 분량의 이 영상은 '벌써 3년이 지난 일일수도 있지만, 그들은 매일 투쟁해왔다'며 '잊을 수 없다는 결심을 해야 할 때'라고 당부한다.



바다의 수호자라 불리는 혹동고래가 바다로 침몰한 세월호를 지난 3년간 지켜주고 있었다는 동화 같은 애니메이션 '노래하는 고래'는 참사의 참혹함과 쓰라린 기억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풀어냈다.

제작자인 정혜승 양(수원 매탄고 3학년)은 "배가 바다에서 떠나 육지로 올라간 뒤 고래가 노래하며 배를 기억하는 장면은 우리도 그 날과 그 사람들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라며 "많은 사람이 그 날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 세월호 참사 당시의 순간을 종례시간 후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방송과 함께 교실에 갇힌 학생들의 모습으로 빗대어 표현한 '종례시간',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교실 생활을 떠올리지만 이내 한 명씩 사라져 빈 교실에 홀로 남겨진 학생이 친구 교복에 노란 리본 배지를 다는 모습으로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기억의 서약' 등의 영상도 눈여겨 볼만하다.



경기도교육청 대변인실 청소년미디어담당 박태준 사무관은 "세월호에 대한 기억과 생각이 성인과 청소년 간에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아이들은 세월호를 정치적, 사회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일상 속에서 이해하고 기억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도교육청은 출품작 중 17편을 선정해 지난 8일 상영회를 가졌으며, 청소년방송 미디어경청 홈페이지(https://www.goeonair.com/)에 공개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young8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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