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로 변신한 92세 포천 '욕쟁이 할머니'

입력 2017-04-02 08:00
수정 2017-04-02 09:27
화가로 변신한 92세 포천 '욕쟁이 할머니'

아들 홍승표 화백 지원…20일부터 포천 모산아트센터서 전시회

(포천=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 "그동안 구수한 욕으로 정을 나눴으나 몸이 불편해지면서 사람들과 접촉이 뜸해져 이제는 그림으로 소통합니다."

경기도 포천시 광릉숲에서 된장 요리 전문점을 운영하며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한 정의만(92)씨가 오는 20일 그림 전시회를 열어 화제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여는 전시회다. 막내아들인 유명 화가 홍승표(54) 화백의 도움이 컸다.

정씨가 그림을 시작한 계기는 좀 남다르다.

정씨는 2009년 장염으로 병원에 갔다가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쓰러졌다. 급하게 다른 병원으로 옮겼으나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에서 3개월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회복됐으나 고령에도 정정하던 전과 달리 주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신세가 됐다. 그렇게 다시 3개월을 일반 병실에서 지낸 뒤 퇴원했지만 정씨는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차진 욕으로 호령하던 당당한 모습은 사라졌고 1997년부터 온갖 정성을 쏟았던 음식점도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직원에게 맡겨야 했다. 홍 화백이 항상 정씨의 곁을 지키며 대소변을 받아냈다.

그러던 2015년 9월, 홍 화백은 불현듯 어머니의 손에 힘이 없어진 점을 느꼈고 안타까운 마음에 색칠공부를 권유했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정씨도 점차 재미를 느꼈다.

그 옆에서 홍 화백도 자신의 작품활동에 매진했다.

지난해 12월 홍 화백은 어머니 침대 옆 벽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언뜻 보기에는 낙서 같지만 예술가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홍 화백은 지난달 30일 기자와 만나 "어머니는 자식을 힘들게 키우느라 평생 그림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분인데 벽지에 그린 그림을 처음 본 순간 표현 등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며 "내 몸에 흐르는 예술가의 피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후 홍 화백은 어머니에게 종이와 연필, 색연필 등을 드렸고 정씨는 침대에 누워서 또는 책상에 앉아 닥치는 대로 그렸다.

처음에는 사람만 그리더니 어느 순간부터 살아온 이야기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가평 화악산과 동두천 소요산 자락의 천막생활 시절, 포천에 정착해 유원지 등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던 시절 등을 담았다.

또 5명의 자녀를 키우며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순간들도 기억해 냈다.

정씨의 그림은 차라리 추상화에 가깝지만 무엇을 표현했는지 초보자도 곧 알아챌 정도로 공감하고 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홍 화백이 동료 화가에게 어머니의 그림을 보여주자 무척 놀랐다고 한다. 아들의 작품활동을 옆에서 많이 봐서 그런지 소와 말 등 동물 그림은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홍 화백은 어머니 옆에서 종종 민화를 그렸다고 했다.



정씨는 한동안 아이들에게 젖 먹이는 자신, 천막 속 가족, 아들과 뽀뽀하는 모습 등을 그리더니 최근에는 자신을 찾는 병원장과 병원 직원 등 지인을 도화지에 담고 있다.

정씨가 3개월가량 그린 그림은 100점이 넘는다. 홍 화백은 어머니의 그림을 대부분 전시할 생각이다.

'욕쟁이 할머니 그림이야기'라는 제목의 전시회는 오는 20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한 달간 포천시 소흘읍에 있는 모산아트센터에서 열린다.

홍 화백은 제29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그동안 미술대전에서 7회 입선하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예, 산수화, 민화 등은 물론 한자 등 언어와 이미지를 한 화면에 담아내는 독특한 기법으로 인정받는 화가다. 2015년에는 미국에서 고 박수근 화백의 작품과 함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최근에는 어머니가 오래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자 '수'(壽)를 활용해 효를 표현한 작품을 그리고 있다.

홍 화백은 "어머니의 그림에는 모자상이 많은데 아들에 대한 사랑, 수호자 같은 모습이 많이 담겼다"며 "전시회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따뜻하고 애틋한 사랑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kyo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