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인데…3~4월에도 비 오면 제설작업 왜?

입력 2017-03-31 09:00
완연한 봄인데…3~4월에도 비 오면 제설작업 왜?

노면, 대기보다 3∼4도 낮아…'어는 비'·블랙 아이스 위험

방심했다간 '미끌'…다리·터널 주변 수십중 추돌사고 빈발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타닥타닥 탁탁!'

비가 내리던 지난 25일 오전 승용차를 타고 중앙고속도로 충북 제천∼ 강원도 원주 구간을 달리던 박모(48) 씨 일행은 깜짝 놀랐다.



어느 순간부터 무슨 알갱이가 차에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 났다. 실제로 차 밖에는 작은 알갱이들이 팝콘 튀기듯 노면에서 튀어 오르는 광경이 펼쳐졌다.

알갱이 정체는 한참을 달린 뒤에야 드러났다.

앞서 달리는 제설차에서 소금과 염화칼슘이 쉴 새 없이 도로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당시 승용차의 외부 온도계는 영상 5도를 가리켰다.

알갱이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지만, 금세 더 커다란 의문이 생겨났다.

'영상의 날씨에 비가 내리는데 대체 왜 제설작업을 하는 걸까? 환경에도 안 좋고 차도 부식시키는데…….'

보기 드문 광경에 박 씨 일행 사이에선 급기야 제설작업 이유를 두고 작은 논란이 벌어졌다.

박 씨 등은 "지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으니 창고에 넘쳐나는 제설제를 소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일행은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느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맞섰다.

공통된 의견도 있었다. "어쨌든 이해가 안 간다"는 거였다.



박 씨 일행의 흔치 않은 경험은 '어는 비'(freezing rain) 현상 때문이다.

어는 비는 액체 상태로 내리던 비가 지표면에 닿거나 물체에 부딪혔을 때 마치 유리면처럼 코팅된 형태로 얼어붙는 현상이다.

대기 중에서는 비로 내리다가 물체에 닿는 순간 얼음으로 변한다.

어는 비가 내리면 도로는 투명한 얼음으로 덮이지만, 눈에는 얼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블랙 아이스' 현상이다. 운전자들이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대형 사고의 원인이 된다.

어는 비는 자동차는 물론 항공기 안전과도 직결된다. 항공기상관측에 'FZ'라는 별도의 분류 코드가 있을 정도다.

이날 박 씨 일행이 지나던 구간에서는 한국도로공사가 어는 비와 블랙 아이스에 대비해 예비 차원에서 제설제를 살포 중이었다.

도로공사 강원본부 관계자는 "제천나들목부터 금대2터널 구간은 고도가 높고 고개도 2곳이나 있어 눈비가 내리면 빙판길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며 "25일 오전에도 결빙이 우려돼 제설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고도와 지형에 따라 지점별로 온도 편차가 커 영상 5도 이하인 곳도 많았다"고 전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박 씨 일행이 지나던 당시 중앙고속도로 제천∼원주 구간의 대기 온도는 영상 2∼5도 분포를 보였다.

도로 표면 온도는 이른 아침에는 대기 기온보다 낮고, 낮에는 더 높기 때문에 어는 비는 새벽을 비롯한 오전에 많이 내린다.

특히 지표면 열 손실이 큰 다리 위에서 자주 일어난다. 낮 시간대 일사량이 적어 새벽에 기온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라트케·맥퍼슨 연구(2007)를 보면 다리 위 노면 온도는 대기 온도보다 보통 1∼2도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이 영상이더라도 다리에서는 어는 비에 의한 블랙 아이스로 빙판길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바람까지 분다면 대기와 다리 위 노면 온도는 더 크게 벌어져 3∼4도까지 차이가 난다.

바람 때문에 물이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아 가는 탓이다. 증발 잠열(潛熱) 현상이다. 한여름에도 물속에 있다가 바깥으로 나오면 추위를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상청 한상은 사무관은 "다리 주위로 바람이 통과해 물이 증발하면서 노면 온도를 크게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터널 주변도 바람이 심해 노면 온도와 대기 온도 차가 다리 못지않게 크다.

이런 현상으로 비 오는 날 빙판길이 종종 생겨나고, 이 때문에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대형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12년 12월 경기도 김포 25중 추돌사고와 전북 군산 14중 추돌, 2008년 청원-상주 고속도로 29중 추돌, 2008년 충북 보은 20중 추돌사고가 대표적 사례다.

산악지대여서 다리와 터널이 많은 중앙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 청원-상주 고속도로 등은 어는 비로 인한 교통사고로 한동안 악명이 높았다.

아스팔트보다 열 흡수가 덜 되는 콘크리트 포장 도로는 어는 비에 더욱 취약하다.

고지대도 마찬가지여서 제설대책 기간이 다른 곳보다 훨씬 길다.

정부의 제설대책 기간은 매년 11월 15일부터 이듬해 3월 15일까지인 데 비해 도로공사 대관령지사와 강릉지사 등이 관리하는 일부 고속도로 구간의 제설 기간은 4월 15일까지로 한 달이나 길다.

웬만한 봄꽃이 활짝 핀 뒤에도 제설작업이 계속되는 셈이다.

도로공사 강원본부 강병윤 차장은 "꽃이 핀 뒤에도 눈이 내리고, 비가 내려도 노면에는 얼음이 어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고지대와 다리, 터널 주변 등 결빙 위험 구간을 지날 때는 방심하지 말고 안전운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k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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