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도 가부장제 거부한 여성 있지 않았을까요"

입력 2017-03-28 13:39
"조선에도 가부장제 거부한 여성 있지 않았을까요"

'세뇨리따 꼬레아' 유하령 작가…전쟁포로 끌려간 기생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조선 사회에도 가부장적 이념을 잘못됐다고 생각한 여자들이 있지 않았을까요. 기생이 아마 그런 부류였을 것 같아요. 사대부 계층을 위해 복무하면서 분열된 사고를 가지고 그 질서 안에 있었을 거예요."

유하령(55) 작가의 장편소설 '세뇨리따 꼬레아'(나남출판)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세계 곳곳을 떠도는 두 기생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다.

'기생 엄니' 수향과 딸 정현은 1592년 임진년 4월 동래성 전투에서 왜군에 끌려간다. 정현은 '기생의 사랑은 죽음 같은 단 한 번의 사랑'이라는 엄니의 말을 거역하고 역시 포로로 끌려온 이근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 때문에 엄니와 헤어졌지만 이근과 사이에 낳은 아들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13년 만에 찾은 조선은 '화냥년'이 살 곳이 못 됐다. 가부장 체제를 복구하는 데 혈안이 된 양반들에게 정현은 역적이나 다름 없었다. 다시 엄니를 찾아 일본으로 향하다가 풍랑을 만나 죽을 뻔한 위기를 겪지만 포르투갈 상선 선장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사실상 조국에서 쫓겨난 정현에게 선장은 '세뇨리따 꼬레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세뇨리따 꼬레아, 내가 너한테 바라는 건 한 가지야. 조선 귀족여자 연기를 해. (…) 남자를 모르는 처녀처럼, 아니, 순결을 지키는 여자처럼 행동하라고."



수향은 양반사회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보통의 기생인 반면 정현은 사랑에 자신을 맡기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주체다. 작가는 "요즘 여성들도 세뇨리따 꼬레아 정도의 개방된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1인칭 시점으로 썼다"고 했다.

작가는 2013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백성들을 그린 소설 '화냥년'을 냈다. 두 번째 소설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해상전투, 선상반란, 인도의 향락문화 등 대항해 시대 세계 곳곳이 무대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남편 한명기 교수(명지대 사학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본 고서점을 뒤져 찾아낸 대항해 시대 관련 서적을 참고했다. 한 교수는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사평설 병자호란' 등의 책을 쓴 조선전쟁사 전문가다. 작가는 "다음에는 해방정국 여성 혁명가의 사랑과 그 불가능성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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