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혼선이냐 韓과도정부 경시냐…틸러슨 만찬 생략 진실은
엄중정세 감안하면 단순실수였다해도 '해프닝' 치부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7일 서울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한 뒤 만찬을 하지 않은 데 대해 한미 양측의 설명이 엇갈려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단순히 소통 과정의 실무적 실수일수도 있지만 미국이 5월9일까지로 시한이 정해진 현재 한국 정부와의 소통을 경시하는 것이거나, 한국의 대미 소통 채널에 이상이 있는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 18일 미국 인터넷 언론 '인디펜던트저널리뷰'(IJR)와의 인터뷰에서 '피로때문에 한국에서의 만찬을 취소했고,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한국 신문 보도가 있었다'는 질문에 "그들(한국 측)은 저녁 초대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순간에 그들 입장에서 (만찬을 하지 않는 것이) 대중에 좋게 비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피곤해서 만찬을 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라고 부연했다.
직전 방문지인 일본에서는 만찬을 하고 한국에서는 안 하는 데 대해 비판 여론이 일 것 같아서 한국 정부가 자신의 여독 때문인 것으로 '둘러댔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발언을 인터뷰를 통해 공개적으로 한 것 자체도 외교적 결례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만찬 생략'에 대한 한국측 설명은 달랐다. 외교부 당국자는 19일 "한미 양측은 틸러슨 장관의 국무장관으로서의 첫 방한이 갖는 중요성과 한반도 정세의 엄중함을 감안해 긴밀하게 일정을 조율했다"며 "만찬 일정과 관련해서는 의사소통에 혼선이 있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바 필요하다면 향후 적절한 설명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통령 궐위 상태에 따른 정상외교의 공백기에 트럼프 행정부 초대 외교장관의 방한과 한미 외교장관회담은 한국 정부로서는 가장 중요한 외교 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측이 일부러 만찬 초대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결국 외교부 당국자의 말 처럼 '소통상의 혼선'이 있었을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그저 해프닝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우선 한반도 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주한 미국대사가 아직 내정도 되지 않은 것을 비롯한 미측 인적 공백이 야기한 문제라면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우려스러운 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약 50일후면 대선에 의해 한국 새 정부가 출범하고, 외교장관도 바뀔 공산이 큰 점을 감안해 미측 실무자 차원에서 틸러슨 장관에게 아예 만찬에 대한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 역시 문제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대외정책이 자리잡혀가는 때 한국의 과도 정부에 세심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 아시아 정책을 전체적으로 새로 짜는 시기인 만큼 한국으로선 현재의 정상외교 공백과 과도정부의 한계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미 외교에 집중력을 쏟아야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위안부 표기와 관련한 미국 국무부의 실수 역시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 국무부는 틸러슨 장관이 지난 16일 도쿄에서 진행한 미일 외교장관회담 공동 기자회견 전문(全文)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면서 위안부의 영어 번역을 '컴퍼트 위민'(comfort women)이 아닌 '컨플릭트 위민'(conflict women)으로 기재했고, 이를 발견한 한국 외교 당국이 한국시간 18일 수정을 요구했음에도 19일 오후 4시 현재까지 수정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 대해 외교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틸러슨 장관이 한미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 제재ㆍ압박 기조에 거의 전적으로 공감하는 발언을 하는 등 회담 자체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지만, 회담후 만찬과 같은 부수적인 사안이 부각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윤 장관과 틸러슨 장관은 지난달 독일 본에서의 첫 양자회담과 이번 회담 등 정식 대면 2차례와 복수의 전화통화 등을 통해 긴밀한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틸러슨 장관이 윤 장관으로부터 그간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배경 등에 대해 누차 듣고 이해를 넓힌 것이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 수립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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