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석학이 정의하는 고통은 도덕적 경험"

입력 2017-03-15 16:04
"하버드 석학이 정의하는 고통은 도덕적 경험"

아서 클라인만 의료인류학 교수 이화여대서 특강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할아버지 세대는 전쟁, 부모 세대는 경제 위기를 각각 겪었고 우리 세대는 우리가 최악의 세대라고 주장합니다. 한국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고통을 겪은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적 외상의 역사적 기억에는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기에 모든 측면을 봐야 합니다."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내 강의실 강단에 아서 클라인만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섰다.



클라인만 교수는 의사이자 인류학자이다. 의료인류학, 문화정신의학, 국제보건, 사회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선도적 연구를 펼쳐온 세계적 석학이다.

이날 클라인만 교수는 '사회를 위한 열정: 사회적 고통, 사회과학, 사회적 돌봄'을 주제로 한 특강에서 자신이 연구해온 문화인류학, 사회생물학, 사회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고통을 조명했다.

클라인만 교수는 "사회과학이 직업으로 발전하면서 사회 개혁과 인간 삶 조건의 개선이라는 원래 초점의 길을 잃었다"며 "사회과학자들은 다른 사회비평가들과 달리 '과학적' 방법으로 탐구한다고 하지만 이는 그들이 연구하는 대상인 보통 사람들과도 유리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회과학 변혁의 가장 돋보이는 사례는 의료인류학"이라며 "신체, 정신, 도덕, 사회적 고통에 대한 지식의 순환은 사회과학이 인신매매, 전염병, 난민, 노년층 소외 등 여러 시급한 주제에 기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점점 상업화하는 동시에 자신이 몸담은 공간인 대학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클라인만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대학을 지배하는 시장의 명령, 학문적 성취의 가치를 통제하는 순수하게 실용주의적인 기준들은 사회과학이 인간에 대한 돌봄과 인류 사회의 발전에 헌신하는 길을 막았다"고 지적했다.

현대 세계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이 장차 도덕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있었다.

클라인만 교수는 "근대성으로 인해 인간이 고통에 둔감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오늘날 인간이 겪는 고통의 경험은 전례 없는 수준의 도덕적 관심과 사회적 관여를 끌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타인에 대한 감정 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제도에도 우리는 감정적으로 계속해서 타인의 웰빙에 관심을 둔다"고 말했다.

클라인만 교수는 "삶의 가장 끔찍한 경험들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며 "이를 통해 고통은 도덕적인 경험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통을 도덕적 경험으로 인식하는 것은 인간이 겪는 고통의 사회적 의미와 한계를 분석하는 데 필수"라며 "고통은 그 고통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피해를막기 위한 개선 행위까지 요구하는 것"이라고 고통의 의의를 규정했다.

이번 특강은 이화여대 국제개발협력연구원과 글로벌소녀건강연구원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 중인 '한국 글로벌 헬스 전략' 과제의 하나로 기획됐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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