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두렁 소각' 사망자 82%가 불낸 사람…발화자 평균 77세(종합)

입력 2017-03-17 12:11
'밭두렁 소각' 사망자 82%가 불낸 사람…발화자 평균 77세(종합)

해충은 못 잡고 소중한 목숨만…1981년 이후 사상자 485명

매년 10명가량 참변…만만히 여겼다 산불 번지면 속수무책

(전국=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지난 7일 충북 충주시 산척면 이모(90) 씨 집 부근 밭에서 화재가 발생해 이 씨가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불은 이 씨가 쓰레기를 태우다가 시작됐다.

그는 불길이 인근 산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25m 떨어진 집과 밭을 오가며 진화에 나섰다가 연기에 질식해 쓰러졌다.

논·밭두렁이나 쓰레기를 소각하다 실수로 불을 낸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농촌 인구의 상당수가 노인인 데다 고령일수록 큰 경계심 없이 두렁 소각에 나섰다가 위급 상황을 맞으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화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지난 10일에는 경기도 평택에서 밭에 불을 놓던 70대 노인이 갑자기 번진 불길에 숨졌고, 같은 날 양평에서도 쓰레기를 소각하던 80대 노인이 사망했다.

6일과 4일에도 경기도 연천과 화성에서 밭의 잡풀을 태우던 80대와 60대가 화마에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불을 놓았다가 피해를 보는 건 노인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11일 충북 영동에서는 박모(46·여) 씨가 쓰레기를 태우다 불길이 주변으로 번지자 급한 마음에 손으로 불을 끄려다 화상을 입기도 했다.

산불통계연보를 보면 1981년부터 2015년까지 산불로 숨지거나 다친 485명 가운데 69.7%인 335명이 산불 가해자, 즉 불을 낸 사람 본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산불 사망자(363명) 중에서는 81.8%인 297명이 산불 가해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연도별 사상자를 보면 1997년과 1995년 각각 24명으로 가장 많았고, 1989년 22명, 1993년 20명 순이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도 한 해만 빼고 모두 두 자릿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한 자릿수였던 사상자는 2014년 10명이 발생한 뒤 2015년에도 7명에 달했다.

논·밭두렁이나 쓰레기 소각을 하다 산불을 낸 가해자들은 신체적인 피해를 보지 않더라도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실수로 산불을 내면 3년 이하 징역이나 1천5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다행히 화재로 번지지 않는다 해도 산림 인접지 100m 이내에서 논·밭두렁 등을 소각하면 5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두렁이나 쓰레기를 태우다 산불을 내는 경우 입산자 실화와 달리 검거율도 높아 처벌을 면하기는 어렵다.

2015년의 경우 입산자 실화 사건 검거율은 9%에 그쳤지만, 논·밭두렁 소각 산불 가해자 검거율은 83%, 쓰레기 소각 산불은 76%에 달했다.



산불을 내면 형사처벌과 별도로 산주에게 민사상 손해배상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농촌 지역의 평범한 노인인 소각 산불 실화자들은 순간의 실수로 감당하기 힘든 신체적,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겪게 된다.

산림청이 중앙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조사한 '심리학적 접근을 통한 소각 산불 예방방안 연구'에서 두렁 산불 가해자의 평균 연령은 77세, 농산폐기물 소각은 63세, 쓰레기 소각은 54세로 나타났다.

또 소각 산불의 상당 부분은 행위자들의 인식과 행동 사이의 불일치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소각 전에는 안전한 장소에서 적당한 양을 태우기 때문에 불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불이 번지면 제어는커녕 '넋이 나가는' 상태가 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실제로 소각 산불을 내는 주민 대부분은 화재가 발생하면 대처 능력이 크게 떨어져 무방비 상태가 된다고 산불 진화 전문가들은 전했다.

특히 고령일수록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데다 갑자기 불길이 번지면 당황한 나머지 효율적인 초기 진화가 거의 불가능하고 허둥대다 스스로 위험한 상황을 자초하기 쉽다.

게다가 이미 혈압이 오르고 심장에 무리가 간 상태여서 조금만 연기를 들이마셔도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노인들은 심한 경우 유독성 가스를 흡입한 지 불과 1∼2초 만에 쓰러지기도 한다.

이재식 충주시 산림보호팀장은 "거동도 쉽지 않은 노인분들이 소각을 하다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한눈을 파는 사이 불이 번지는 일이 많다"며 "두렁 소각은 해충 박멸 효과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산림은 물론 본인한테도 큰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팀장은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무리하게 끄려고 덤비지 말고 일단 119신고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k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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