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수강신청 뺨치는 방과후학교 '신청 전쟁'…학부모들 '부글'

입력 2017-03-14 07:00
대학 수강신청 뺨치는 방과후학교 '신청 전쟁'…학부모들 '부글'

순식간에 마감 탓 온가족 동원 진풍경…직장맘 '허탈'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에 올해 아들을 입학시킨 조모(41)씨는 며칠 전 아들의 방과후학교 신청을 시도했다가 깜짝 놀랐다.

학교 측이 밤 9시부터 학교 홈페이지로 선착순 수강신청을 받는다고 해 홈피에 접속했는데, 원하는 과목들이 순식간에 마감되는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조씨는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하고 대기하다가 딱 1분 늦게 들어갔는데 이미 다 마감돼 5개 과목 모두 실패했다"며 "첫 아이라 경험이 없다 보니 이렇게 경쟁이 치열할 줄은 미처 몰랐다"고 허탈해했다.

조씨는 "직장맘이어서 방과후학교에 아이를 맡기는 것이 필수였는데 학원 스케줄을 짜서 돌려야 하나 고민중"이라며 "정부가 방과후학교 홍보에 열을 올리면서 정작 신청은 이렇게 어렵게 해놓다니 이해가 안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도 분당지역 초등학교에 6학년 아들을 보내는 학부모 정모(46)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 학교는 당초 홈페이지 접수 방식을 이용하다가 수년 전부터 문자 메시지 선착순 접수로 방식을 바꿨다.

정씨는 "아들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려고 남편, 고등학생 딸 아이까지 온 가족이 모여 밤중에 대기하고 있다가 접수 시작과 동시에 일제히 문자를 보내고 난리를 피웠다"고 말했다.



14일 교육계에 따르면 이처럼 매년 학기 초를 비롯해 방과후학교 접수 기간에 상당수 학교에서 수강신청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방과후학교는 초·중등학교 정규수업 이후 외부 강사 등을 초빙해 독서, 논술, 수학, 과학 등 교과 수업과 미술, 음악, 체육 등 다양한 예체능 수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사교육 수요를 학교에서 흡수한다는 이유에서도 방과후학교 정책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수강료가 학원보다 훨씬 저렴해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실제 성균관대 사교육혁신교육연구소가 2015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방과후학교 참여 학생이 미참여 학생보다 연간 40만6천원의 사교육비를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가 무색하게도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부족해 수강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7일에는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인 '나이스'의 보안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 나이스를 이용해 방과후 신청을 받는 서울 일부 학교에서 접속조차 안 되는 등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학부모들은 시스템 안정화는 물론이고, 사전에 정확한 수요조사를 통해 개설 강좌 수 등을 융통성 있게 조정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학부모 정모씨는 "매년 2학기에 방과후학교 평가지를 돌린 다음 개설과목을 정하는데 형식적인 것 같다"며 "실제 신청 전에 정확히 수요 파악을 해서 개설과목 수, 인원을 유동적으로 정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 학부모가 원하는 만큼 충분한 수업을 개설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결국 예산 문제라는 지적이다.

방과후학교 사업은 2008년 지방 이양이 결정돼 교육부는 각 시도에 교부하는 보통교부금에 방과후 예산을 포함해 내려보내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강사료 보전, 보조인력 활용, 토요 프로그램 운영 등에 사용하도록 도시지역은 학급당 59만원, 농산어촌 지역은 학급당 198만원으로 계산해 기준재정수요액을 책정, 보통교부금에 포함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지난해 학교알리미 사이트를 통해 조사한 결과 각 시도에 내려보낸 보통교부금 대비 실제 방과후 예산 편성률은 17개 시도 평균 5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세종 170%, 울산 134%, 제주 108%, 전남 101% 등 예산을 초과 편성한 곳도 있지만 경기 30%, 인천 38%, 충남 39%에 그치는 등 시도별 편차도 컸다.

시도 교육청들은 누리과정 편성을 둘러싸고 정부와 시도가 대립한 것처럼 방과후, 돌봄교실 예산 역시 정부에서 직접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방과후학교 사업을 활성화하려는 정부 방침과 달리 일선 학교는 교사 업무 가중, 안전사고 우려 등 때문에 방과후에까지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각 시도에서 적극적으로 예산을 편성한다면 더 다양한 강좌가 만들어져 학부모 불편을 해소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올해 시도와 협의를 강화해 예산 편성이 충분히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y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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