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특검자료 없이도 '파면'…박 前대통령 의혹사건 '2라운드'

입력 2017-03-12 11:56
헌재, 특검자료 없이도 '파면'…박 前대통령 의혹사건 '2라운드'

비밀엄수의무 위반 인정 → 공무상비밀누설 연결…박 前대통령은 반박

블랙리스트·뇌물 등 혐의 새로 파악…검찰 추가수사·법원 판단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헌법재판소가 기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비위를 토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가운데 헌재가 인정한 것보다 더 많은 비위가 검찰 수사 및 형사재판 과정에서 인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인정한 헌법·법률 위반 가운데 형사처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은 '비밀엄수의무 위배' 한 가지로 볼 수 있으나 이는 헌재 심리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결과가 반영되지 않은 결과로 풀이된다.

헌재가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등을 파면 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일각에서는 '사실관계를 소극적으로 인정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는 탄핵심판에서 활용한 자료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강요·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뇌물수수 등 검찰이나 특검이 파악한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관련 자료가 확보되면 얼마든지 인정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헌재의 한 관계자는 "형사재판에 제출되는 증거가 헌재에는 제공되지 않았고 특검 수사 자료는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며 "헌재는 (탄핵심판 때) 있는 자료를 가지고 사실관계를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본격 수사하는 경우 특검에서 새로 드러난 혐의가 더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헌재 결정문에는 박 전 대통령의 혐의를 짙게 할 가능성이 있는 여러 단서가 기재돼 있다.

비밀엄수 의무 위배가 우선 눈에 띈다.

국가공무원법 60조는 공무원은 재직 중에는 물론 퇴직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엄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에게 대통령 일정·외교·인사·정책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문건이 유출되도록 '지시 또는 방치'했다고 판시했다.

검찰, 특검, 헌재 등 3개 기관은 일단 박 전 대통령이 기밀을 누설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형사재판의 유죄 인정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검찰, 특검이나 헌재와 결이 달라질 수도 있어 주목된다.



기업이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 등에 출연하고 특정인을 임용하도록 박 전 대통령이 요구한 것에 대해 헌재는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헌재는 헌법 15조 직업선택의 자유와 헌법 23조1항 재산권 보장에 비춰 박 전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되 이를 형사법에 따라 평가하지는 않았다.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의 속성도 갖고 있지만, 본질상 같지 않고, 관련 재판이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형사법적인 판단은 법원의 몫으로 남았다.

검찰과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의 이런 행위가 강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뇌물수수 등에 해당한다고 보고 재판에 넘긴 상태다.

특검이 새로 인지한 박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혐의인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일명 '블랙리스트') 관여 의혹은 헌재의 심판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만 형사재판 절차를 준용하는 헌재의 탄핵심판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엄격한 증명을 원칙으로 하는 법원의 형사재판에는 차이가 있으므로 헌재의 결론과 검찰 및 법원의 판단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 공소사실의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기 때문에 검찰이나 특검이 주장하는 의혹들을 모두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법관이 범죄 혐의가 확실하다고 인정할 정도로 입증되지 않으면 피고인의 주장·변명에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더라도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는 것이 형사재판에서의 유무죄 인정에 관한 대법원 판례다. 판례는 이를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해야 하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한다.



박 전 대통령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어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그의 헌법재판 대리인단이나 형사사건 변호인단은 '연설문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표현을 하기 위해 최순실의 의견을 들은 사실은 있으나 연설문·말씀 자료 외의 문건을 최순실에게 주도록 지시하지 않았다', '문화융성·경제 발전을 위해 재단 설립을 지원했을 뿐 출연이나 기업 인사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그간 주장했다.

강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뇌물수수 등의 혐의에 대해서도 "완전히 엮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 신분이 돼 불소추 특권이 없어진 '피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미진한 수사를 어떻게든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의 움직임에 이목이 쏠린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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