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그가 내린 곳·엄마의 골목
코러스크로노스·생일 그리고 축복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 그가 내린 곳 = '함께 집을 돌볼 사람을 찾습니다.' 화자는 게시글만 보고 찾아간 케이의 집에서 동거하게 된다. 집에는 만화가와 시인·사진작가·기타리스트 등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드나든다. 케이는 여러 차례 연애하면서 파트너와 사업을 벌인다. 네 번째 연애를 끝낸 케이는 한동안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들' 모임에 나간다. "사람들은 고독도 전시하려고 하더군." 냉소하면서도 모임에서 만난 이들을 또 집에 데려온다.
200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작가 박혜상(51)의 두 번째 소설집. '사랑의 생활'에서 케이처럼 등장인물들은 방황하고 우연히 만나고 또 헤어진다. 성소수자와 해고노동자, 무명 작가 등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인생들이 기묘한 연대를 시도한다.
"상황이 종료되자 우리는 뭉뚱그려 바깥사람들로 불렸다. 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과 공장 밖을 떠도는 사람들.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우리에게 상황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일자리를 찾아 흩어졌다. 우리에게 우리는 우리를 열외로 만드는 우리일 뿐이다."
문학과지성사. 276쪽. 1만2천원.
▲ 엄마의 골목 = 작가 김탁환(49)이 올해 일흔다섯인 모친과 함께 고향 진해 곳곳을 걸어보고 쓴 에세이.
진해를 걸어보기로 약속한 재작년 7월 엄마가 갑자기 다쳐 입원했다. 매일 하모니카를 부는 엄마는 잠결에 멋진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침대에서 내려와 걷다가 하모니카를 밟고 넘어졌다. 엄마는 병원에 누워 진해여중 시절 자주 걷던 철길이며, 흑백다방 부근 산책길이며 점찍어둔 길들을 읊는다. 퇴원한 뒤 진해를 걸으며 엄마는 추억을 길어올리고 아들은 옮겨 적는다. 엄마가 시인 백석의 마산길을 걷고 싶다고 해 진해를 벗어나기도 한다. 엄마가 가덕도의 국민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시절, 작가가 진해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군복무하던 때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진다.
엄마는 지금까지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살았을까. "내가 죽는 날까진 네게 들려줄 이야기가 마르지 않을거야. 이렇게 마주앉으면, 이야기가 흘러나와. 내가 전혀 챙겨두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술술 나온다니까. 신기한 일이야, 정말!"
난다. 212쪽. 1만3천원.
▲ 코러스크로노스 =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작가 윤해서(36)의 첫 번째 소설집.
"과거와 현재가, 과거와 미래가, 미래와 현재가 뒤섞여. 끝이 없었다. 끝이 없어. 끝이 없을 것이었다. 말로의 말로. 언어는 무성이라. 말로는 무한 증식한다. 말로는 자가 증식한다. 말로는 모든 말로를 빨아들인다."
뒤틀린 시공간을 이동하는 낯설고 실험적인 여행 서사들을 엮었다. 윤경희 평론가는 "윤해서 소설의 시공간은 숭고의 지배 아래 있다"며 "삼차원적 실제에 구속되지 않고, 기존의 재현적 언어를 답습하지도 않는, 새로운 양상의 허구가 조형된다"고 말했다.
문학과지성사. 486쪽. 1만4천원.
▲생일 그리고 축복 = 장영희(1952∼2009) 전 서강대 교수와 김점선(1946∼2009) 화백이 함께 만든 영미시 선집. 2006년 출간된 베스트셀러 '생일'과 '축복'을 합쳐 새로 펴냈다.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 영미권 시 99편이 원문과 함께 실렸다.
장 전 교수는 '생일'을 내며 썼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와 아름다운 그림이 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책'을 보고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기쁨과 위안을 얻는다면, 아마 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될 겁니다."
비채. 448쪽. 1만8천원.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