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국론 분열 '민낯' 내보인 3.1절 광장

입력 2017-03-01 20:49
[연합시론] 국론 분열 '민낯' 내보인 3.1절 광장

(서울=연합뉴스) 근 한 세기 전인 기미년의 3월 첫날,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 압제의 엄혹한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다 함께 떨쳐 일어났다. 온 민족이 한 마음, 한 목소리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한의 자주독립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 민족사적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3.1절이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그날부터 무심한 세월이 간단없이 흘러 어언 98주년이 됐다. 온 국민이 경건한 마음으로 맞아야 할 3.1절이건만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기엔 우리 현실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서울의 한복판인 세종대로 사거리와 광화문 광장 일대는 이날, 총동원령을 받고 운집한 탄핵 찬·반 집회 인파로 뒤덮였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을 열흘 전후 앞두고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진 양 세력은 상반된 구호로 목청을 돋우며 세 대결을 벌였다. 민족 대동단결의 역사적 상징과 같은 3.1절이기에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사분오열한 우리의 민낯은 때마침 내린 봄비 속에 처참히 일그러졌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집회에 이어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이 단체가 주도한 서울 도심 '태극기 집회'가 15번째를 맞았지만 청와대를 향해 행진한 것은 처음이다. '촛불집회'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행진이 이뤄져서인지 다행히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손가락을 자해한 50대 남성이 흉기와 혈서를 갖고 집회에 나오는 등 일부 과격 행동도 목격됐다. 탄기국 선언문에도 '피로서 지킬 것' 같이 격한 표현이 많았다. 이 집회에는 자유한국당의 윤상현·조원진·김진태·박대출·이우현·백승주·전희경 의원과 이인제 전 최고위원도 참석했다. 반면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이끄는 18차 '촛불집회'에선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구호가 쏟아졌다.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승인하지 않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퇴진 요구도 나왔다. 퇴진행동 측은 "1천만 촛불과 지지하는 시민이 있어 탄핵 인용을 앞둔 것이 사실"이라는 주장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3·1운동의 힘으로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1945년 대한민국이 해방됐다"면서 "(참가자) 한분 한분이 유관순 열사"라고 치켜세웠다고 한다. 촛불이든 태극기든 정치인이 이런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특히 연단에 올라 자극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극도로 삼가야 한다. 지금처럼 민감한 상황에서 격한 언행은 불미스러운 충돌을 유발할 수도 있다.



황 권한대행은 3.1절 기념식사에서 "최근 일련의 사태로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갈등이 확대되고, 서로 반목·질시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면서 국민통합과 화합을 호소했다. 하지만 국민 갈등을 앞장서 다독여야 할 정치권은 대통령 탄핵을 놓고 극명히 대립했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대변인은 "3.1절에도 대한민국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 한없이 무력하다"며 "분열과 갈등을 걷어내고 '애국, 번영, 화합'의 3·1운동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바른정당의 이기재 대변인은 "지금 국민은 촛불과 태극기 집회로 양분돼 분노와 저주로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면서 "국민이 분열하면 국력이 쇠락하고 나라가 망한다"며 통합을 당부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대변인은 "태극기의 숭고한 의미가 박 대통령 심판을 거부하는 세력들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며 "오늘 촛불광장에서 국민과 함께 순국선열의 뜻을 되새기며 박 대통령 탄핵을 소리 높여 외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김경진 수석대변인은 "경사스러운 3·1절인데 온전히 기뻐할 수 없다"면서 "국정농단과 특권, 반칙으로 얼룩진 부정부패에 국민이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광장의 분열이 극단적 대치로 치닫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날 태극기집회는 지금까지 열린 것 중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한다. 경찰이 집회인원 집계를 내놓지 않고 있지만 촛불집회가 오히려 '맞불' 같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집회 규모가 중요한 건 결코 아니다. 광장에서 가시화된 지지 세력의 크기를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하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벌써 '다음 주말'을 다짐하는 말이 들린다. 헌재 결정을 앞두고 양쪽 세력이 무의미한 '세 과시' 경쟁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런 집회에서 헌재를 압박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래서 부당하고 또 위험하다. 정치인들이 앞장을 선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분명히 반 민주적이고, 반 법치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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