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추락] "8년만에 매출 마이너스네요"…여성복 영업본부장 한숨

입력 2017-03-01 06:41
[소비 추락] "8년만에 매출 마이너스네요"…여성복 영업본부장 한숨

"옷 한벌 사는데 고민 또 고민"…마트 '떨이' 판매에만 사람 몰려

(서울=연합뉴스) 유통팀 = "금융위기(2008년 전후) 때보다도 더 안 팔리는 거 같아요."

국내 굴지의 여성복 브랜드 'A'사의 영업총괄 본부장 김 모 씨는 최근 판매 동향을 묻자 한숨을 쉬며 이렇게 답했다.

백화점·아웃렛 등에 입점한 이 브랜드의 주력 상품은 60만~70만 원대 여성 정장류인데, 지난해 매출이 2015년보다 5%나 줄었다.

김씨는 "8년 만에 처음 기록하는 마이너스 성장"이라면서 실적 부진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원인은 주요 고객층인 40~50대 여성들이 최근 수년째 지갑을 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소비자들의 소득이 급격히 감소한 것은 아닌데도, 최근 수년간 가장 눈에 띄는 고객 구매 행태의 변화는 소비에 지나치게 신중해졌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2010년대 초만 해도 옷이 마음에 들어 두 번 정도 방문한 여성은 대부분 해당 상품을 구입했는데, 요즈음에는 고민과 갈등 끝에 거의 다섯 번 정도는 들러야 겨우 옷 한 벌을 산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이런 현상은 가처분소득 대비 지출 비중을 나타내는 한국 가구의 평균 '소비성향' 지수가 지난해 4분기 69.7%로 사상 처음 60%대로 떨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100만 원을 손에 쥐면 70만 원도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후·고용 등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그만큼 현재를 즐기는 소비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1월 50대 가구주의 소비지출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가 96으로 2009년 4월(96) 이후 7년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급 국산 잡화 브랜드 'B'사의 백화점 판매팀장 김 씨도 비슷한 말을 한다.

김 씨는 "올해 들어 2월까지 누적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0%나 줄었다"며 "예전에는 백화점 장사가 안되면 면세점, 면세점이 안되면 아웃렛이 잘 됐는데 이제는 모든 유통 채널에서 비슷한 폭으로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소비 위축이 '소비 절벽'으로 악화되다 보니,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쫓아 '웬만한 가격대의 좋은 제품'을 고르던 단계조차 지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소비자 대부분이 같은 상품군의 '최저가'에 몰리는 현상이 뚜렷하다고 김 씨는 전했다.

그는 "소비 양극화 때문에, 아주 고가의 명품은 꾸준히 팔린다"며 "하지만 나머지 소비자들은 이제 모두 10만 원대 가방 브랜드만 찾으니 우리 브랜드처럼 40만~50만 원대의 고급 브랜드 타격이 가장 크다"고 울상을 지었다.

결국, 이 브랜드는 올해 초 '자존심'을 버리고 10만원대의 저가 라인(품목군)을 내놓았고, 반응은 예상대로 좋은 편이다.

골프의류 대리점을 운영하는 권 모 씨도 날로 얼어붙는 소비 심리를 현장에서 느끼고 있다.

권 씨는 "5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이 20~30% 빠졌다"며 "예전에는 씀씀이가 컸던 단골손님들의 객단가(1인 평균 구매액)도 크게 줄었고, 옷 세 벌 정도 살 상황에서도 하나만 사거나, 이월 상품을 찾거나, 아예 구경만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고개를 저었다.



소비를 최대한 줄이려는 한국인의 '짠물' 소비 경향은 대형 할인 마트에서도 뚜렷하다.

A마트 관계자는 "진열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상품을 30~80% 싸게 파는 '알뜰 구매 코너'를 찾는 손님이 예년보다 20~30% 정도 많아진 것 같다"며 "2~3년 전과 비교해 알뜰 구매 코너 상품이 동나는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고 말했다.

B마트 관계자도 "폐점 1시간~1시간 반 전부터 마감세일을 하는데, 예전보다 손님이 많이 몰린다"며 "과거에는 마감세일을 해도 일부 상품은 남았는데, 최근에는 매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떨이' 수준의 가격 인하가 아니면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기 때문에, 웬만한 프로모션은 잘 '먹히지'도 않는다.

C마트 과일 MD(상품기획자)는 "1+1, 최저가 행사 등을 꾸준히 진행하지만, 줄인 마진을 상쇄할 만큼 매출이 늘지 않아 걱정"이라며 "예전에는 전단 홍보 상품은 평소의 3~4배 매출이 올랐으나, 요즈음엔 많아 봐야 2배 정도"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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