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루키를 왜 읽습니까…'문단 아이돌' 어떻게 만들어졌나

입력 2017-02-23 08:40
당신은 하루키를 왜 읽습니까…'문단 아이돌' 어떻게 만들어졌나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8)가 4년 만에 내는 신작 장편소설에 일본 열도가 들썩인다. 초판 100만 부를 찍은 출판사는 정식 발매되기도 전에 30만 부를 증쇄하기로 했다. 24일 출간되는 신작은 책 제목과 '제1부 출현하는 이데아편', '제2부 변하는 메타파편'이라는 부제 말고는 아무런 정보도 공개되지 않았다. 신작이 나오면 무조건 읽고 보는 작가가 하루키다.

'노르웨이의 숲'이 올해로 꼭 30년 됐고, 작가는 칠순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도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유행 치고는 문단을 점령한 시간이 너무 길다. 그렇다고 '하루키 현상'이 오로지 작품성에서만 비롯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일본 문예비평가 사이토 미나코(齊藤美奈子·61)의 '문단 아이돌론'(한겨레출판)은 이런 의문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는 평론가와 독자들이 하루키의 작품을 하나의 컴퓨터 게임으로 대한다고 분석한다. 롤플레잉게임(RPG) 마니아들은 게임 안에 숨겨진 기술을 찾는데 열광한다. 하루키 읽기는 작가가 문장들 사이에 숨겨놓은 의미를 찾는 오타쿠 놀이가 됐다. 하루키도 이에 부응해 점점 더 많은 수수께끼를 내고 있으니 일종의 인터랙티브 게임인 셈이다.

하루키 읽기가 처음부터 게임이었던 건 아니다.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나 '1973년의 핀볼'(1980) 등 초기작은 단순하고 소박했다. 차가운 맥주와 샌드위치·스파게티, 무겁지도 경박하지도 않은 재즈음악 등 인테리어 소품이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했다. 소설가 네지메 쇼이치는 이를 두고 '다방 주인 문체'라고 표현했다. 작가의 문체와 세계관이 호응한다면 하루키의 세계는 다방 안에 머물러 있었다.





다방 안 낙서장 같던 그의 작품세계는 1982년 '양을 둘러싼 모험'부터 확장된다. 이야기는 풍부해지고 더 많은 인테리어 소품과 게임 장치를 추가했다. 비평가들은 '1970년대', '상실', '소외', '자폐', '전공투' 등 자신들이 좋아하는 단어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됐다.

'노르웨이의 숲'으로 서정성을 확보한 작가는 '댄스 댄스 댄스'(1988)에서 옛 다방 시절 단골손님들을 달랜 다음 '태엽 감는 새'(1994)처럼 '게이머 전용'으로 보이는 작품들을 내놓는다. 하루키의 모든 단어와 문장은 게임기가 됐다. 수수께끼 푸는 능력을 뽐내고 싶은 게이머들은 아직 발매되지도 않은 작품 내용을 예측하기도 한다.

게임에선 바깥의 현실 세계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제 하루키에서 시대의 상실과 소외를 찾던 구세대 평론가들이 조소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다. "'자폐 시대'의 문예평론가들은 왜 그렇게 '내면'을 좋아하고 '타자'를 좋아하고 또 '곤란'을 좋아하는 것일까.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고뇌한다."

게이머들은 온갖 자료를 수집해 작품과 게임에 몰두한다. '예스터데이', '페니레인'이 아니고 왜 하필 '노르웨이의 숲'인가. "거기에 숲(森)이라는 나무(木)를 세 개 조합한 한자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에 우리는 두 표를 던진다." 삼각관계 이야기라서 '숲'이 들어간 제목을 썼다는 추리에는 강은교 시인의 시 '숲'까지 등장한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평론가들도 하루키를 피츠제럴드·도스토옙스키·마르케스에 빗대며 나름의 게임을 벌인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와 철학자 들뢰즈도 나온다. 저자는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유행과 맞물린 하루키 비평게임을 일본 오타쿠 문화의 시작으로 본다. 평론가들은 작가와 대등하고 생산적인 관계를 맺어왔는가. 저자는 여기에도 회의적이다.

책은 하루키 말고도 요시모토 바나나·우에노 지즈코·다치바나 다카시·무라카미 류 등 일본 문단과 논단에서 주목받는 이들이 어떻게 '아이돌'이 됐는지 재치있는 필치로 분석한다. 일본 작가들과 언론·독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단 바깥에서 일본 문화를 들여다보는 책.

나일등 옮김. 30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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