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동남아 바다 2차대전 침몰군함들…고철로 팔려나간다

입력 2017-02-12 09:01
'사라지는' 동남아 바다 2차대전 침몰군함들…고철로 팔려나간다

침몰선은 국제법상 전사자 묘역…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중국해에 침몰한 각국 군함들이 잇따라 인양돼 고철로 팔려나가 논란이 일고 있다.

침몰선은 국제법상 전몰자 묘역으로 간주한다. 실제로 선체 안에 유해가 남아 있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아 피해국들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12일 뉴스트레이츠타임스 등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보르네오섬 북부 말레이시아령 사바 주(州)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구 일본군 수송선 3척이 최근 심각하게 훼손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 수송선들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10월 2일 코타키나발루 북쪽 90㎞ 지점에서 미국 잠수함의 어뢰에 맞아 거의 동시에 침몰했고, 이 과정에서 군인 45명과 승무원 83명이 사망했다.

약 30m 깊이에 약 1㎞ 간격으로 가라앉은 해당 선박들의 잔해는 다양한 해양 생물들의 보금자리가 됐고, 황금어장이자 스쿠버 다이버의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이곳을 찾은 다이버와 어민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대형 크레인이 설치된 준설선이 침몰선의 선체를 부숴 인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을 목격한 다이빙 강사 마이크 헤저는 "침몰선 두 척은 각각 98%와 99%의 잔해가 사라졌다. 나머지 한 척은 한데 뭉쳐 놓은 금속 더미가 돼 있었다"고 전했다.

침몰선을 인양한 현지 토목업체는 말레이시아 사바 대학(UMS) 고고학부를 통해 연구 목적으로 인양을 승인받았다고 주장했다.

금속 선체의 부식이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환경오염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잔해를 건져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지 언론은 이들이 고철로 팔아치울 목적으로 침몰선을 인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사바주 해양당국은 뒤늦게 인양 작업을 중단시켰지만, 침몰선은 완전히 파괴된 상태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근해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격침된 각국 군함 100여 척이 가라앉아 있다.

침몰한 군함을 훼손하는 행위는 국제법 위반이다.

하지만 이 해역에서는 고가의 금속 부품을 노린 고물업자들이 선체 일부를 뜯어내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졌으며, 최근에는 선체를 폭파해 잔해를 수거하거나 아예 통째로 건져내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인도네시아 자바해에 가라앉아 있던 영국 중순양함 엑시터호와 구축함 인카운터호, 미국 잠수함 퍼치호 등 연합군 소속 군함 5척의 잔해가 바닥이 팬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는 일이 발생해 외교 갈등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해당 선박들은 태평양 전쟁 초기 일본 해군과 교전 중 침몰한 군함들이며 당시 사망한 연합군 병사는 2천100여명에 달한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정부에 진상규명과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전몰장병 묘역 훼손은 심각한 범죄"라며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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