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때리던 주자들, 불출마선언하자 "국가원로 역할" 기대
'박근혜 연장' 비판하던 문재인 "외교자문 받고 싶다" 구애
안희정 "고뇌에 찬 결단" 평가…'半半' 혹평하던 박지원 "애석"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일제히 때리던 야권과 범여권의 대선주자들이 1일 반 전 총장이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태도를 바꾸고 나섰다.
반 전총장이 중도에 대선레이스를 그만둔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국가 원로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며 앞다퉈 덕담을 내놓은 것이다.
야권 선두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을 본선의 잠재적 라이벌로 간주하면서 '박근혜 정권의 계승자'라는 식으로 낙인 찍기에 주력해왔다.
문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이 지난 12일 귀국 일성으로 '정치교체'를 언급하자 이튿날 "정권교체를 말하지 않고 정치교체를 말하는 것은 그냥 박근혜 정권을 연장하겠다는 말로 들린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나 문 전 대표는 이날 오후 불출마 소식을 접하고는 "좋은 경쟁을 기대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에서) 외교 문제에 관해서는 반 전 총장으로부터 많은 자문과 조언을 받고 싶다"고 '구애성' 발언을 내놨다.
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는 반 전 총장이 귀국할 당시 "무슨 해방 후 이승만 박사가 금의환향하는 것인가"라고 직격탄을 날렸었다. 안 지사는 "한마디로 한국 품격을 완전히 개발도상국으로 만드는 현실"이라며 "그 분의 멘탈리티 자체가 이해 안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의 하차 소식을 접한 안 지사는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쌓아온 경륜을 바탕으로 국가원로로서 더 큰 기여를 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작년 하반기부터 출마설이 나돌던 반 전 총장을 겨냥해 "모든 게 반반(半半)"이라고 깎아내렸었다. 그는 "출마할지도 반반, 새누리당이나 야당으로 가는 것도 반반, 모든게 반반이다. 그래서 반 총장", "역시 정치초년생" 등 표현을 썼다.
박 대표는 특히 반 전총장이 귀국한 이후 조심스럽게 연대를 모색하면서도 "함께 할 수 없다"고 견제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박 대표는 이날 "애석하게 생각한다"며 "경험과 경륜, 업적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고 국가와 전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할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범여권에 속하는 바른정당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지난 19일 반 전 총장을 "국내의 산적한 문제를 개혁하기에는 역부족한 인물"로 혹평한 바 있다.
그러나 유 의원이 이날 내놓은 논평의 골자는 "정치를 직접 하지 않더라도 유엔 사무총장 등 평생의 경륜과 경험을 대한민국을 위해 소중하게 써주기를 바란다"는 당부였다.
이들 인사가 이처럼 반 전총장에게 돌연 '유화적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더이상 반 전 총장을 견제할 필요가 없어진 측면도 있지만 유엔 사무총장 출신으로서 여전히 명망이 있는 반 전 총장을 끌어안으면서 '반사이익'을 노려보려는 포석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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