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작가의 일갈 "문제는 미치광이만 대통령되고 싶어한다는 것"

입력 2017-02-01 08:10
美작가의 일갈 "문제는 미치광이만 대통령되고 싶어한다는 것"

커트 보니것 졸업식 연설집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사회주의 비슷한 것만 보면 토하고 싶으십니까? 위대한 공립학교 제도나 전 국민 의료보험처럼? (…) 문제는 이겁니다. 미치광이만이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는 거죠. 심지어 고등학교에서도 그랬습니다. 심각하게 머리가 이상한 학생들만이 반장 선거에 출마했죠."

마치 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이 연설의 주인공은 1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1922∼2007)이다. 2004년 4월 이스턴 워싱턴대 졸업식장에서 한 연설의 일부다. 한 해 전 이라크를 침공한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을 향한 냉소가 계속된다. "베트남에서 무지막지하게 멍청한 전쟁을 벌이는 동안, 음악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 그곳 주민들이 우리를 뻥 차서 내쫓은 후에야 인도차이나 반도에 질서가 찾아왔습니다."

보니것은 196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청년 반(反)문화의 영웅이자 대변인이었다. 특유의 풍자와 블랙 유머로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제도권과 기성세대를 꼬집은 연설은 대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보니것의 대학 졸업식 연설문을 모은 책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원제 'If this isn't nice, what is?')가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책에 실린 연설을 한 시기는 1972년부터 2004년까지 폭이 넓지만, 작가는 80대에 접어들어서도 청년들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봤다. 1994년 5월 시러큐스대에서는 나이와 경험을 들먹이며 청년들을 어린애 취급하는 기성세대를 대신해 사과했다.



"바로 이 순간에도 여러분이 몇몇 유명한 재앙-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등등-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성인이 아니라고 말할 바보 같은 늙은이가 있을 겁니다. (…) 끔찍하고 엉망진창인 이 행성의 상태에 대해 사과합니다. 그러나 여긴 언제나 엉망이었죠. '좋았던 옛날'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날들만 있었습니다."

작가의 조언과 격려는 이달 졸업시즌을 맞은 대학가에서 들려올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와 정확히 반대지점에 있다.

"제 생각에 오늘날 미국 젊은이들은 사실 패기가 부족한 게 아닙니다. 다른 무엇보다 증오로부터 희열을 느껴온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1978년 5월 프레도니아 칼리지)

보니것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졸업식 연사였지만 정작 자신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 코넬대에서 생화학을 공부하던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됐다.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간 그는 2만 명 넘게 숨진 1945년 드레스덴 폭격에서 운좋게 살아남았다. 이 경험은 그의 대표작 '제5도살장'의 소재가 됐다.

옮긴이 김용욱씨는 "그의 풍자 정신에는 미국과 그의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다"며 "'벌거벗은 임금님을 볼 수 있는 사람' 보니것의 말은 수많은 독자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썼다. 문학동네. 216쪽. 1만3천800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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