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헌재, 중심 잡고 흔들리지 말아야
(서울=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소장 박한철)의 결정 시점을 놓고 이런저런 관측이 무성하다. 이르면 2월 말 늦어도 3월 초에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2말 3초' 설이 대표적이다. 그 연장선에서 5월 초 '벚꽃 대선'을 예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 성급함은 차치하고 법치주의 측면에서 불편함이 없지 않다.
이런 관측은 다분히, 박 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이 각각 1월 31일과 3월 13일에 퇴임한다는 '예정된 사실'에서 싹을 틔웠다. 헌재가 전례 없는 집중 심리로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일부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하지만 헌재의 신속 심리는 '국정 공백' 최소화라는 현실적이고 타당한 명분을 딛고 있다. 결코 시중에 나도는 '2말 3초' 설을 의식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게다가 '2말 3초' 설은 은연중 탄핵 인용을 전제로 깔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헌재가 '2말 3초'를 의식했댜면 그 자체로 언어도단이다.
인용을 하든, 기각을 하든 헌재 결정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차기 대선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결정 시점도 매우 중요하다. 헌재가 신속히 절차를 진행해 결정을 내린 시점이 우연히 '2말' 또는 '3초'일 수는 있다. 하지만 '2말 3초' 설 같은 것으로 헌재에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 자칫 법치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 주말이면 헌재 앞에 몰려가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도 그런 의미에서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은 박 대통령한테 적용된 범죄명을 삭제하고, 헌법위배 사실을 위주로 소추안을 재작성해 금주 초 헌재에 제출할 것으로 전해졌다. 박영수 특검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연루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을 구속한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 측은 탄핵소추안을 수정할 경우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며 제동을 걸려는 것 같다. 물론 헌재의 결정 시점을 놓고 양측의 이해관계가 다르기는 하다. 국회 측이 탄핵소추안을 다시 쓴다면 심리 지연을 최대한 막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자꾸 논쟁거리를 만들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 박 대통령 측의 한 변호사는 21일 '세월호 참사 한 달 후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는 언론보도를 문제 삼고 나섰다. 보도한 언론사는 물론 이런 내용을 알려준 특검 관계자까지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이 변호사는 밝혔다. 특검이 '2월 초 대통령 직접조사'를 언급한 것에 자극받은 듯하나 이런 식의 과민 반응은 많은 국민이 보기에 언짢다. 헌재 심리와 특검 수사에서 얼마나 유리한 상황을 만들지는 모르나 서로 금지선은 넘지 않는 게 좋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 건에 대해 언제,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전적으로 헌재에 달려 있다. 박 소장은 지난 3일 첫 공개변론 모두발언에서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돼 국정 공백을 초래하는 위기 상황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면서 "대공지정(大公至正·아주 공변되고 지극히 바름)의 자세로 엄격하고 공정하게 최선을 다해 심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기본적 인식과 방침은 이 말에 다 녹아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기조에 따라 헌재는 한주 세 차례의 변론기일까지 잡으며 신속히 심리 절차를 진행해 왔다. 이해할 수 없는 사유를 내세워 증인 소환에 불응하거나 불필요한 요청으로 시간을 끌려는 것은 모두 헌재의 기본 방침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헌재는 지금까지 의도성이 짙은 여러 가지 방해 행위를 단호히 차단해 왔다. 결정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바람도 거세질 것이다. 헌재가 끝까지 외압을 배척하고 정도를 가기 바란다. 국가와 국민만 생각하며 법대로 하는 것이 바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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