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쏟아붓고도 "완전히 묻혔다"…실리콘밸리 거물들 '쓴맛'

입력 2026-11-05 19:07
미 중간선거서 막대한 후원에도 공화 패배
데이터센터 규제 강화 등 기술업계에 악재 이어져


미국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이번 미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에게 6억 달러(약 8,000억원) 넘는 후원금을 쏟아부었지만, 공화당이 크게 지면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이번 선거에 혼자 쓴 후원금만 4억7,000만 달러(약 6,300억원)가 넘는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텍사스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나선 공화당 켄 팩스턴 후보에게 들어갔다.

텍사스는 스페이스X 본사가 있는 곳이자, 1988년 이후 민주당 상원의원이 나오지 않아 공화당 텃밭으로 꼽혀온 지역이다. 그러나 민주당 제임스 탈라리코 후보가 팩스턴 후보를 꺾고 당선을 확정하면서 머스크의 거액 후원은 결국 무위로 돌아가게 됐다.

다른 경합주 상원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들도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기술기업 감시 시민단체 '테크 오버사이트 프로젝트'의 사샤 하워스 집행이사는 "기술 업계 경영진들이 수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그들의 노력은 결국 종이호랑이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며 "미국인들은 이들의 부패한 영향력은 물론 이들과 연관된 모든 후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빅테크(거대 기술기업)의 선거자금 집행을 조율해 온 한 정치권 관계자는 "돈이 먹히지 않았다"며 "일론 머스크는 5억 달러에 가까운 돈을 쓰고도 자신이 뛰어든 모든 선거에서 졌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인플레이션, 이란 전쟁을 둘러싼 유권자들의 분노가 민주당 쪽으로 표심을 한꺼번에 쏠리게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파도가 너무 거대해서 (기술업계의) 후원금이 완전히 묻혀 버렸다"라고 덧붙였다.

친AI 정책과 가상화폐 규제 완화를 기대하며 공화당 후보들에게 거액을 댄 다른 실리콘밸리 거물들도 쓴맛을 봤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인 벤처투자사 '앤드리슨 호로비츠'(a16z)의 공동창업자 마크 앤드리슨과 벤 호로비츠는 9,000만 달러 넘게 썼다. 가상화폐 거래소 제미나이 공동창업자인 윙클보스 형제의 지출도 500만 달러를 웃돌았다. 오픈AI 공동창업자 그레그 브록먼 부부는 친트럼프 슈퍼팩 '마가'(MAGA Inc.)와 AI 규제 완화를 지지하는 슈퍼팩 '리딩 더 퓨처'에 2,500만 달러씩 냈다.

공화당 텃밭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리딩 더 퓨처'로부터 250만 달러를 지원받은 공화당 달린 그레이엄 후보가 민주당 애니 앤드루스 후보에게 졌다. 친가상화폐 정치인을 후원하는 슈퍼팩 '페어쉐이크'는 오하이오주 상원의원 선거에 나선 가상화폐 규제론자 셰러드 브라운 민주당 후보를 떨어뜨리려고 광고비 5,000만 달러를 썼지만, 그의 당선을 막지 못했다.

데이터센터 건설을 멈추거나 막는 안건이 미국 곳곳에서 주민투표를 통과한 것도 기술업계에는 악재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소 45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데이터센터 건립을 제한하는 안건이 주민투표에 올랐고, 이 가운데 1곳을 뺀 나머지 지역에서 가결됐거나 가결을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다만 억만장자들이 이번 선거에 쓴 돈이 이들의 전체 재산과 비교하면 극히 적은 수준이라고 짚었다. 인류 첫 '조만장자'인 머스크의 선거 후원금은 백만장자가 400달러(약 53만원)를 낸 것과 비슷하다는 게 FT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