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기술주와 반도체 기업 주가가 최근 큰 폭으로 조정을 받은 가운데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JP모건은 반도체 다운사이클 우려가 이미 주가에 충분히 반영돼 추가 하락이 제한적이라고 진단한 반면,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대규모 수급 이탈과 AI 투자 속도 조절 가능성을 경고하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 JP모건 "우려 선반영… 주가 추가 하락 제한적"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고점 대비 40%이상 급락한 점을 짚었다. 현재의 주가 수준은 반도체 다운사이클 우려가 선반영된 가격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71%)를 제외하면, 과거 세 차례 다운사이클 평균 하락폭(40%대)에 도달해 하방 경직성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펀더멘털 측면에서 균열 징후가 없다고 봤다. 과거 침체기와 달리 메모리 재고가 타이트하며, D램 현물가격도 전 분기 대비 보합 또는 4%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HBM 가격 협상 역시 공급자 우위로 전개되고 있어 다운사이클을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JP모건은 "대형 메모리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약 3배 수준까지 떨어져 극단적인 저평가 상태"라며 "적극적인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 강력한 주주환원이 뒷받침될 경우 가파른 반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투자의견은 두 종목 모두 '비중확대'를 유지하되 주주환원 여력이 높은 SK하이닉스를 최선호주로 제시했다.
● 골드만삭스 "10년 만의 최대 매물 폭탄"
반면 골드만삭스는 최근 반도체주 급락의 배경을 글로벌 자금의 기계적인 수급 이탈에서 찾았다. 골드만삭스 프라임 브로커리지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헤지펀드들은 10월 12~16일 기술주 포지션을 대거 정리했다. 2016년 데이터 집계 이래 가장 빠른 속도였다.
주목할 점은 이번 투매가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가 아니라 기존에 보유하던 주식을 팔아치운 '롱 포지션 청산'이었다는 점이다. 업종별로는 반도체 섹터에 가장 큰 규모의 매도세가 발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주의 급락 역시 개별 기업의 펀더멘털 악화 때문이라기보다는 글로벌 펀드들의 리스크 관리성 비중 축소라는 수급 파도에 직격탄을 맞은 결과라는 분석이다.
다만 골드만삭스는 "대규모 매도세 이후에도 헤지펀드 내 기술주 비중은 23.5%다. 5년 평균 대비 상위 10% 수준"이라며 "기술주 전반에 대한 장기 관심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 모건스탠리 "AI 투자 둔화 위험…우량주로 이동해야"
모건스탠리는 가장 직접적인 경계 신호를 보냈다.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프라 투자 지출 규모가 연간 1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지만, 향후 투자 속도가 둔화할 경우 밸류체인 전반의 성장 기대감도 함께 꺾일 수 있다고 짚었다.
빅테크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수익화 속도는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모건스탠리는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회의론이 커질수록 반도체를 비롯한 AI 하드웨어 공급망 전반의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낙폭 과대에 따른 반도체 저가 매수를 노리기보다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과 높은 자기자본이익률을 갖춘 전통 우량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방어적으로 재편하는 전략이 유리하다고 권고했다.
● 3분기 실적 시즌이 단기 분수령
전문가들은 향후 주가의 단기 방향성이 3분기 실적 발표 시즌에서 드러날 것으로 내다봤다. 빅테크 콘퍼런스콜에서 차세대 AI 모델 도입 계획과 2027년 설비투자 유지, HBM 계약 구조 등 우호적인 신호가 확인된다면 바닥을 확인하고 반등할 공산이 크다.
반면 '설비투자 축소'나 '수익성 둔화'에 대한 언급이 나오며 모건스탠리가 경고한 투자 속도 조절론이 힘을 얻을 경우, 골드만삭스가 지적한 글로벌 자금의 이탈 흐름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