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성과급 소식이 화제다. 올해 실적에 따라 일부 직원이 내년에 기존 성과급과 특별성과급을 합쳐 세전 수억 원대의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아직 지급되지도 않은 성과급이 벌써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오랜 노력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게 하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통장을 다시 열어보게 만드는 소식이다.
한편에서는 금리 상승 소식이 들려온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과 8월 연이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기준금리는 연 3.0%가 되었고,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오르고 있다. 대출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자 부담이 걱정이다. 누군가는 수억 원의 성과급을 기대하고, 누군가는 다음 달 이자 납부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남의 성과급 소식을 듣는다고 내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통장 잔고는 그대로인데 어쩐지 마음의 잔고는 줄어든 것 같다.
문득 궁금하다. 돈을 많이 벌면 정말 불안도 줄어들까? 우리는 흔히 돈이 많아지면 마음도 한결 편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경제적 안정은 정신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당장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아플 때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선택할 여유가 생긴다.
돈은 단순한 소비의 수단을 넘어 삶의 불확실성을 견디게 해주는 안전망이기도 하다. 그런데 진료실에서는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춘 것과 미래에 대한 걱정 사이 상관 관계는 꼭 반비례가 아니다.
"원장님, 이 정도 가지고 노후가 괜찮을까요? 우리 애들의 미래는 괜찮을까요?"
객관적으로는 당장의 생활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앞으로 건강이 나빠지면 어쩌나, 자녀들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어쩌나, 지금까지 모은 자산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계속된다.
예전에는 돈이 부족할까 봐 불안했는데, 이제는 가진 돈을 잃을까 봐 불안하다. 통장의 잔고는 늘었지만, 걱정의 자릿수도 함께 늘어난 셈이다. 반대로 소득이 그리 높지 않더라도 돈에 대한 걱정이 삶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물론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경제적 기반이 확보되어 있다는 전제는 필요하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경제적 여유는 자신이 삶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조절할 수 있다고 느끼는 통제감을 높여준다. 갑작스러운 지출을 감당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벗어날 선택지도 늘어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커질수록 자신이 통제해야 한다고 느끼는 대상도 늘어날 수 있다.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을지, 투자 판단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지금의 생활 수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신경 쓰게 된다. 미래의 모든 위험에 대비하려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이 커지기도 한다. 돈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아졌지만, 미래까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바로 지난 번 말씀드렸던 '비교'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가늠하는 '사회적 비교'가 계속된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쾌락 적응'이다. 사람은 긍정적인 환경 변화에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다. 처음 연봉이 올랐을 때의 기쁨이나 더 좋은 집으로 이사했을 때의 만족감도 시간이 지나면 평범한 일상이 될 수 있다.
처음 월급이 올랐을 때는 세상이 조금 아름다워 보인다. 평소에는 지나쳤을 디저트도 하나 더 주문하고 싶어진다. 가격표는 흘깃 보고 바로 카드를 꺼내는 손, 멋지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 그 월급이 당연해지고 다음 연봉 협상 시기가 다가오면 다시 마음이 분주해진다. 월급 인상률보다 새로운 월급에 적응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렇다고 돈이 많아져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소득과 행복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들은 소득이 증가할수록 정서적 안녕감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이 큰 사람에게 소득 증가는 현실적인 부담을 줄여주는 중요한 변화다. 다만 소득이 증가하는 것과 마음의 평온이 그에 비례해 커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어도 미래의 불확실성이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돈의 액수만이 아니라, 돈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돈은 자유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돈은 인정의 척도다. 많이 벌어야 성공한 사람이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아야 자신의 가치가 유지된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막아주는 유일한 방패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돈이 자신의 가치나 안전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면, 아무리 많이 모아도 충분하다는 느낌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 더 많은 돈이 생기면 잠시 안도하지만 곧 새로운 걱정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무조건 욕심을 내려놓거나 현재에 만족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현실적인 경제적 어려움 앞에서 마음가짐만 바꾸라는 조언은 무책임할 수 있다. 경제적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재정 계획과 안정적인 생활 기반이 필요하다. 다만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갖춘 뒤에도 불안이 계속된다면, 스스로에게 다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나는 얼마를 더 벌어야 안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대신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계속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할까?'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인지, 다른 사람보다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인지, 혹은 지금까지 이룬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인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불안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결국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더 나은 삶을 위해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정작 현재의 삶을 누릴 여유를 잃어버리고 있다면, 한 번쯤 자신이 추구하는 안전과 행복의 기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돈은 삶의 많은 걱정을 줄여준다.
하지만 모든 걱정을 없애주지 않는다. 어쩌면 마음의 평온은 통장에 얼마가 더 쌓이는가 뿐 아니라, 나에게 무엇이 충분한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도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는 일만큼, 가끔은 내 마음의 잔고를 살펴보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자문> 김기원 가야삼성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의학박사, 전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 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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