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 수습을 위해 사재까지 투입하며 '책임 경영'을 강조했던 김병주 MBK파트너스(MBK) 회장이 결국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여야는 김 회장을 증인으로 재차 신청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에도 김 회장이 불출석 의사를 밝힐 경우 종합국감에서 동행명령을 발부하겠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 이번 김 회장의 국감 불출석으로 사모펀드 운영사 대주주의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국감장에 안 나타난 김병주…정치권 "받아드리기 힘들다"
7일 정치권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 6일 중소벤처기업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김 회장은 홈플러스가 현재 회생절차에 들어가 법원의 지도 아래 관리인이 운영하고 있으며 자신은 개별 피투자회사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이사 겸 관리인이 국감에 출석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김 회장은 홈플러스 기업회생 이후 투입된 긴급경영안전자금과 입점 상인 피해 등에 대한 질의를 위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정치권에선 김 회장의 불출석 사유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여야가 김 회장을 증인으로 재차 신청하기로 했다. 만약 김 회장이 재차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할 경우 오는 23일 열릴 중소벤처기업부 종합감사에서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겠다는 방침이다. 국감 증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면 해당 상임위가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 있고 이를 거부하면 국회 모욕죄로 고발할 수 있다.
▲664억원 직접 갚고 2400억원 부담…"책임 다한다" 강조했던 MBK
문제는 MBK가 불과 최근까지 김 회장의 홈플러스에 대한 재무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강조했다는 데 있다. MBK에 따르면 김 회장은 홈플러스에 긴급운영자금을 공급한 큐리어스파트너스의 긴급운영자금(DIP) 대출 원금 600억원과 이자 64억원 등 총 664억원을 개인자금으로 상환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이 가운데 342억원을 우선 변제했으며 나머지 322억원도 추가로 갚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특히 김 회장은 보증채무를 대신 갚은 뒤 홈플러스에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구상권도 행사하지 않을 방침이다.
여기에 김 회장의 개인자산을 담보로 홈플러스에 투입된 우리투자증권 차입금 500억원 가운데 일부도 변제됐다.
MBK 측은 지난해 3월 홈플러스 회생절차 개시 이후 김 회장과 MBK가 직접 부담한 현금 규모가 총 2,400억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금 지원과 대출, 연대보증 등을 모두 합친 전체 재무적 책임 규모는 약 6,000억원이라는 것이 MBK 측의 설명이다.
김 회장 개인과 MBK가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해 상당한 경제적 책임을 부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5년 넘게 홈플러스 이사였는데…국감에선 "경영 비관여?"
이번 국감 불출석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단순히 '김 회장이 국회에 나오느냐'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 측의 논리대로라면 MBK는 홈플러스의 개별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재무적 투자자다. 현재 홈플러스 역시 법원 관리 아래 회생절차가 진행되는 만큼 실제 경영상황에 대해서는 관리인이 답변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문제는 김 회장이 과거 홈플러스 이사회에 5년7개월간 참여했다는 데 있다. 홈플러스 법인 등기사항증명서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 2015년 10월 기타비상무이사로 취임했다. 2018년 5월29일 사임한 뒤 같은 날 다시 취임했고, 2021년 5월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이사직을 유지했다. 등기상 약 5년7개월 동안 공백 없이 홈플러스 이사회 구성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기타비상무이사는 회사의 일상 업무를 직접 집행하는 사내이사와는 다르지만, 이사회의 정식 구성원이다. 김 회장이 현재 홈플러스 경영에 관여하는지 여부와 별개로 MBK 인수 이후 상당 기간 이사회에 참여했던 사실은 등기를 통해 확인됐다.
대규모 개인자금과 MBK 자금을 투입하면서 '대주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해온 상황에서 실제 경영에 참여했으면서도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회 출석까지 거부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반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무엇보다 홈플러스 사태는 단순히 투자자의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입점 상인과 협력업체, 근로자 등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만큼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의 사회적 책임까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앞서 김 회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홈플러스의 구체적인 경영에 관여하지 않아 잘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답변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올해 역시 같은 논리를 근거로 불출석 의사를 밝히면서 '사모펀드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라는 문제가 다시 국감의 쟁점으로 떠오르게 됐다.
▲홈플러스 넘어 롯데카드·고려아연까지…커지는 'MBK 책임론'
이번 논란이 홈플러스 한 곳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변수다. 올해 국감에서는 홈플러스뿐 아니라 MBK의 투자를 둘러싼 여러 현안이 동시에 거론되고 있다. 롯데카드와 딜라이브 등 투자기업의 경영 문제에 더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까지 MBK를 둘러싼 이슈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김 회장은 과거에도 국회 출석 요구에 여러 차례 응하지 않았다. 지난 2015년 홈플러스 인수 이후 고용승계 문제와 관련한 국감에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참했고, 2024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을 때도 출석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정무위 국감에는 출석했지만 다른 상임위의 출석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국감은 홈플러스의 개별 경영 실패 여부보다 국내 사모펀드 산업에서 '대주주의 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문제는 사모펀드 대주주의 책임 범위가 불분명해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논리를 내세우는 데 있다"며 "자금조달이나 위기 대응에서는 대주주로서 책임을 강조하다가 책임을 설명해야 할 자리에서는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긋는다면 시장에서는 책임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결국 대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 역시 일관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투자 성과와 자금 지원에서는 최대주주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경영상 책임을 묻는 자리에서는 '비관여'를 내세울 수 있는지, 사모펀드 운용사의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김 회장의 국감 불출석을 계기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