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인 15일 코요태 빽가가 자신이 독립운동가 진희창 선생의 후손임을 처음 밝혀 화제가 됐다.
빽가는 이날 "독립운동가 경림 진희창 선생이 나의 외증조부"라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 '빽가언니'에서 밝혔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생전에 나에게 '우리 집은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이다. 항상 어디 가서 기죽지 말고 마음의 긍지를 갖고 살아라'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빽가는 20년 넘게 함께 해온 코요태 멤버들에게도 이를 말한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외증조부님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분의 업적에 혹시라도 얹혀가는 느낌이 들까봐 굉장히 조심스러웠다"며 "우리 외증조부께서 독립운동가라며 자랑거리로 삼기에는 그 헌신이 너무나도 크고 무거웠다"고 했다.
그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예전부터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며 "예전에는 내가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나 여력이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럴 수 있게 됐다.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 중에 형편이 어려우시거나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계시면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고 말했다.
빽가는 진희창 선생에 대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있을 때 재정과 운영을 뒷받침하셨던 독립운동가셨다"고 말했다.
진희창 선생은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1911년 상하이로 망명해 영국인이 운영하던 상하이 전차회사 감독이라는 직업을 얻었다. 낮에는 운수회사 감독으로 일하며, 일제를 피해 상하이로 건너오는 독립투사들의 비밀 거처도 마련해주고 자금도 대줬다는 것이다. 빽가는 당시의 진 선생에 대해 "상하이에 일종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임시 의정원 회의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임시헌장을 의정했다. 그 역사적인 대한민국의 첫 출발 과정에 외증조부께서 함께하셨다"고 덧붙였다.
빽가는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하권에도 증조부 이름이 나온다"며 "'진희창 같은 가까운 동지들이 미운 밥을 주지 않고 나를 도왔다'고 쓰여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진희창 선생은 교민 자치 조직 상하이대한인거류민단에서 의사원으로 활동하며 교민사회 재정과 운영을 도왔다.
빽가는 진희창 선생이 밤낮없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뒷바라지 하시다가 광복을 보지 못하시고 1933년 2월 상하이에서 순국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이 공로로 1980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빽가는 영상 설명란에서 "조국의 빛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독립운동가와 순국선열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