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바비'가 한국에서는 기대보다 흥행 실적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정서 때문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일(현지시간) 분석했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개봉한 이 영화는 현재까지 누적 관객수 약 46만명을 기록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지난달 12일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이 360만명을, 지난달 14일 개봉한 '엘리멘탈'이 580만명을 각각 넘긴 것에 비교하면 부진한 성적표다.
여성 권익 운동가 심해인씨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페미니스트 유머가 담긴 여성 중심의 영화는 여전히 금기시되는 주제라는 점을 '바비'가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성들이 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을 망설일 수 있다"며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한국의 많은 개인에게 더러운 단어로 여겨지고, 사람들은 이 사회를 오랫동안 이끌어온 것이 뿌리 깊은 가부장제라는 사실을 대면하기를 불편해한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한국은 여전히 매우 가부장적이고 선진국 중 성평등 부문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심하고 이코노미스트지의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계속 꼴찌"라고 짚었다. 한국은 올해 3월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이 지수에서 조사대상 29개국 중 29위를 기록, 11년 연속으로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보수적 사회 일각에서는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강한 반발이 있다"며 "바비는 '재미있는' 영화로 기획됐다는 점에서 그런 민감한 주제가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은 좋은 반향을 얻지 못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지난 수년에 걸쳐 한국의 남성 위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이 급진적 행동과 결부돼 부정적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영국 출신 한국영화 평론가인 제이슨 베셔베이스는 "일부 여성 주도 영화들이 고전을 겪고 페미니즘 반대론자들이 물론 이런 영화를 공격하겠지만 이런 것들이 바비가 흥행에 부진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라며 "여성 출연자들이 다수인 한국 영화 '밀수'는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 독특한 시장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편 가디언은 '바비'의 한 장면에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며 근거로 내세우는 '구단선'이 그려진 것처럼 보이는 지도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베트남에서 상영이 금지되고, 필리핀에서도 문제가 제기되는 등 각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으나 중국에서는 인기를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