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덕후들에게…"오빠가 범죄자가 되었다"

입력 2022-09-16 18:50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은 가수 정준영의 오랜 팬이었던 감독이 자신과 같은 '실패한 덕후'들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헌사다.

감독의 10대 시절은 정준영으로 가득하다. 그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갔고, 그의 눈에 띄기 위해 팬 사인회 때마다 한복을 입었다. '정준영 바라기'라는 명찰을 달고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가수가 기억하는 팬이 된 그는 '성공한 덕후'가 됐고 그랬기에 자신의 과거가 부끄럽다. 좋아하던 가수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뒤 큰 상처를 받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응원과 사랑이 범죄의 동력이 됐을지 모른다는 자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승리, 강인, 가을방학의 정바비까지. 우상의 추락을 경험한 팬들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혼란스럽다.

내가 좋아하던 우상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는 방어기제, '그런 사람인지 정말 몰랐을까'라는 책망, 아름다웠던 추억과 초라한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의 방황. 영화는 열렬히 좋아하던 누군가에게 크게 실망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솔직하고 발랄하게 풀어냈다.

열심히 모아온 굿즈를 예쁘게 진열한 뒤 국화꽃과 초를 놓고 치르는 '굿즈 장례식'에서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추억을 나누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슬프다. 정준영의 성범죄 의혹을 처음 보도했던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따뜻하다.

카메라의 시선이 젊은 여성 팬들을 담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감독은 고인이 된 배우 조민기의 팬이었던 엄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인 '태극기 부대'를 통해 작품의 폭을 확장했다.

'이제는 덕질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던 친구들이 누군가를 다시 좋아하게 되는 모습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또 그 의미는 무엇인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오세연 감독은 시사회에 앞서 무대에 올라 "어쩌면 저는 좋아하는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이 무모한 여정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영화를 보시고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주신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