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혁신에서 독점으로…갈팡질팡 정책에 '대혼란'

입력 2021-09-24 17:26
수정 2021-09-24 17:26
25일 금소법 시행에 빅테크 '서비스 축소'
금융상품 비교·추천 서비스 줄줄이 종료
2019년 '샌드박스', 지금은 '소비자 피해'
오락가락 정책에 금융 선택권 좁아지나
<앵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계도 기간이 오늘로 종료됩니다.

금융당국이 금융플랫폼의 상품 비교·추천 서비스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 만큼, 가장 큰 변화는 금융상품 비교·추천 서비스에서 감지됩니다.

대부분의 금융플랫폼들이 금융상품 비교·추천 서비스를 개편할 예정이거나 벌써 개편한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금융플랫폼 옥죄기 속에 각종 서비스가 축소되고, 선택권이 줄어드는 효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배성재 기자입니다.

<기자>

토스 애플리케이션에서 접속 가능한 보험 상담 기능입니다.

보험 상담을 신청하면 '전문가'가 등장해 5분간 내게 필요한 보험 상품을 상담해 줍니다.

그러나 금소법이 시행되는 내일부터는 이러한 기능을 찾아볼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금융상품 비교·추천 서비스를 '중개 행위'로 보고 있는 금융당국이 제재 수위를 더 올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험 상품 판매를 일부 중단하고 화면 개편을 완료한 카카오페이.

보험상품 메뉴를 누르면 카카오페이가 아닌 자회사 'KP보험서비스'가 제공하는 상품이라는 안내를 명시했습니다.

보험 내용도 건강이나 자동차 등으로만 구분되어 있고, 세부 내용은 볼 수 없습니다.

토스와 유사한 '보험 해결사' 서비스도 잠정 종료됐고, 오늘부터는 다이렉트 자동차 보험료 비교 서비스도 멈췄습니다.

이 밖에 네이버파이낸셜이나 NHN페이코 등도 금융상품 비교·추천 서비스를 개편 중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금융당국의 갑작스러운 빅테크 규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이 빅테크 규제의 근거로 말한 '동일기능·동일규제 원칙'.

[고승범 금융위원장 / 16일 금융협회장 간담회: 금융 안정 차원에서 그리고 금융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동일기능·동일규제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고요. 핀테크가 육성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금융 혁신이 중요하다는 우리 금융위원회의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4년 전 금융 혁신과 소비자 편익을 이유로 샌드박스 제도를 시행해, 금융 규제를 면제해 준 건 금융위 자신입니다.

규제를 풀어준 당사자가 갑자기 소비자 보호를 들어 규제에 나선 모양새입니다.

금융위는 금융상품 비교 서비스 외에도 더 강력한 금융플랫폼 규제를 예고 중입니다.

한국경제TV 배성재입니다.

<앵커>

자세한 이야기 취재기자와 나눠보겠습니다. 정치경제부 장슬기 기자 나와있습니다.

장 기자, 오늘로 금융소비자보호법 계도 기간이 끝나면서 금융권이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인데요. 빅테크나 핀테크기업들은 혁신으로 각광받던 곳이 아니었습니까? 갑자기 왜 이렇게 상황이 역전된거죠?

<기자>

혁신으로 시작된 기업들이 이제는 '독점'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규제의 대상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속된 말로 '너무 커버렸다'는 것이죠. 카카오의 경우 카카오뱅크를 시작으로 결제수단인 카카오페이까지 영역을 넓혔고, 이 때문에 기존 금융사들은 빅테크들과 역차별을 받는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도 했습니다.

금융당국도 이제는 이를 바로 잡아서 빅테크도 기존 금융사와 똑같은 규제를 받으라는 건데, 이 시점을 놓고 논란이 좀 있습니다.

리포트에서 보신 것처럼 샌드박스라는 이름으로 혁신서비스를 키워줬다가 현재는 규제를 하는 상황인데, 애초에 핀테크 업체들이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영위할 수 있는 영역을 제대로 설정해줬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미 다 키워둔 뒤에 사후 규제 방식으로 전환되니 혼란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상황을 보니, 네이버와 카카오는 물론이고 유사한 금융상품 비교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소형 업체들도 당장 서비스를 중단하게 됐네요?

<기자>

네, 금융상품 비교서비스를 '중개'로 보고 서비스를 중단한 중소형 핀테크업체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금융상품 비교서비스로 떠오른 핀크라는 업체가 있는데요. 오늘부터 보험 추천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핀테크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높일 수 있는 금융상품 비교 서비스를 내세워 금융권에 진출했고, 당국 역시 혁신성을 인정해줬는데 현재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에 따라 아예 서비스 운영을 중단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겁니다.

문제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빅테크들은 일부 금융서비스를 중단해도 타격이 적지만, 중소업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취재 결과 금융당국이 유망 핀테크기업으로 꼽았던 몇몇 업체들은 현재 투자 유치가 모두 무산된 상황이고, 일부 업체들은 당장 구조조정에 돌입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입장에서는 예외규정에 해당되는 사안은 없는지 정확하게 가이드라인을 받고 싶은데, 금융당국에서도 기약 없이 세부 가이드라인 마련까지는 기다리라는 입장이고, 이건 취재 뒷이야기긴 한데 업체들이 당국과 소통하고 싶어도 금융위원회와 전화 연결 자체가 잘 안 된다고 합니다.

<앵커>

핀테크업체들도 문제겠지만, 당장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 선택권이 줄어드는 문제도 발생하겠네요. 이런 서비스들을 대체할 대안책은 없는건가요?

<기자>

먼저 가장 직격탄을 입는 분야가 보험인데요. 보험을 비교해주는 것도 일종의 '중개'라고 보고 서비스를 규제한 겁니다. 물론 기존에도 비영리로 운영되는 보험다모아 등 상품을 비교해주는 서비스들이 있었는데, 소비자 접근성이 생각보다 낮아서 활용도가 높지 않았습니다.

중단 위기에 놓인 서비스 중 또 하나는 카카오톡에서 보험을 선물하는 서비스인데요. 보험 선물하기 서비스는 미니보험 활성화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각 보험사 홈페이지를 통해 소액보험을 선물하는 기능이 일부 있기도 합니다만 이 역시 소비자들이 직접 찾아봐야 하는 만큼 피로도는 더 높겠죠. 금융권 자체적으로 금소법에 저촉되지 않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든다고 해도,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에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앵커>

표면적으로 봤을 때 이번 규제는 소비자들에게 당장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다면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공정경쟁을 외쳐왔던 기존 금융사들에게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나요?

<기자>

그 동안 금융사들이 빅테크의 영역 확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비쳐왔죠. 플랫폼에 금융상품을 입점시키는 것 자체로 수수료가 발생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그 만큼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실제로 카카오나 네이버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 금융서비스 문화를 빠르게 앞당긴 주체들이기도 하고요.

접근성이 높았던 채널에서 상품이 빠지게 되니 금융사 입장에선 당연히 단기적으론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 때문에 일부 금융사들은 자체적으로 온라인 채널을 강화해서 소비자 이탈을 막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데, 소비자들이 이미 플랫폼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어서 얼마만큼 보전이 될 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앵커>

소비자들을 위해 제정됐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의 편의성과 선택권을 막는 금소법, 참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기자>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규제가 금융시장의 발전을 막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기존 금융사들에게 빅테크라는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은 긴장감을 주면서도, 성장을 위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는 평가가 많았는데요. 이번 규제가 선한 영향력까지 막는 것이 아니냐, 이런 지적들이 잇따릅니다. 관련해서 전문가 의견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황인창 보험연구원 팀장: 기존 플레이어들이 사실은 빅테크들이 갖고 있는 혁신을 벤치마크하는 경향이 많았거든요. 이제는 핀테크들이 시장에 진입하는게 막혀서 벤치마크나 협업의 기회는 적어졌다고 볼 수 있고요. (2:26)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들어오면 기존 플레이어들은 긴장을 하거든요. 그럼 그 쪽에 더 신경을 쓰죠. 그런데 그 효과는 사실 줄어든거죠.]

또 하나 우려되는 점은 규제라는 것은 한 번 생기면 사실 사라지기가 힘듭니다. 단기적으로는 빅테크의 독점을 막을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혁신기업의 등장을 막아서 결국 한국판 아마존을 만들어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장 기자,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