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 위기' 中 민심 들끓는데…시진핑은 어디에?

입력 2020-02-09 16:36
수정 2020-02-09 16:39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이하 신종코로나) 감염증 위기가 심각하게 고조한 중국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형 참사나 자연재해 때마다 현장을 찾아 꼼꼼하게 지휘하는 모습을 연출한 과거 사례와 대조적이다.

시 주석이 신종코로나 대응의 최일선에 보이지 않는 것은 부실한 대응에 대한 정치적 책임론으로부터 그를 보호하려는 의도라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8일(미국동부 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의 음력 설 명절 춘제(春節) 무렵 신종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며 국내외에서 창궐하며 위기 수준이 급격히 증폭한 국면에서 시 주석은 공개 행보를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 주석은 지난달 23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춘제 단배식에서 연설하며 '샤오캉 사회'(小康社會·의식주 걱정이 없이 비교적 풍족한 사회)를 건설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을 뿐 통제불능 상태로 빠져드는 신종코로나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바로 이튿날 신종코로나 발원지 우한(武漢)에는 '봉쇄령'이 내려졌다.



시 주석은 지난달 25일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열어 신종코로나 확산을 논의하고 28일에는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만난 것 외에는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해외 인사 면담이나 공산당 회의 주재로 행동 반경을 국한했다.

일선 방문 등 직접 드러나는 지휘 역할은 리커창(李克强) 총리에게 맡겨졌다. 발원지 우한을 직접 찾아 의료진을 만난 이도 시 주석이 아니라 리 총리다.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 면담 후 시 주석은 일주일간이나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 CNN 방송이 이를 두고 '시진핑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중국 관영매체는 보도 직후 시 주석이 훈센 캄보디아 총리를 만난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NYT는 중국이 시 주석의 모습을 숨기는 것은 신종코로나 대응 실패에 따른 민중의 분노와 정치적 위기로부터 그를 보호하려는 의도라고 짚은 전문가 시각을 소개했다.

신종 감염병 확산 징후를 초기에 알리고도 되레 당국으로부터 고초를 겪고 결국 신종코로나에 감염돼 우한의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죽음 후 중국 온라인에는 애도의 글뿐만 아니라 '언론 자유를 원한다'는 표제어를 단 글이 286만건에 이르는 조회수를 기록한 후 삭제됐다.

이 글은 철벽 통제를 자랑하는 중국의 검열에도 몇시간 동안이나 살아 있었다.



중국 당국이 또 시 주석이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에게 자신이 '직접 대응을 지휘한다'고 말했다고 관영 매체를 통해 알렸다가, 이를 시 주석 정부가 '합심해서 지휘한다'로 표현을 수정한 것도 눈길을 끈다.

중국 관영 매체의 이같은 표현 변화는 공동 책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고 NYT는 추측했다.

중국 정치 전문 저술가 룽젠(榮劍)은 "이번 일은 공산당의 정당성에 1989년 6월 4일 사건(톈안먼 사태) 다음 가는 큰 충격을 줬다"고 진단했다.

신종코로나 위기는 장기적으로 시 주석의 장기 집권 구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 주석은 2018년 개헌으로 2022년에 제3기 집권을 실현할 발판을 마련했으나 신종코로나 위기에서 큰 타격을 받는다면 당내 실력자들과 타협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NYT는 전망했다.

NYT는 한편으로는 시 주석이 정치적 위기를 만났지만 그의 장악력은 굳건하다고 평가했다.

그가 당내에서 도전을 받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으며, 책임론을 피해 신종코로나 대응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도 위기 때 뒤로 물러서서 책임론을 벗어나는 전략을 택했다.

소련·중국 정치 전문가인 세르케이 라드첸코 카디프대학 교수(국제관계학)는 "시진핑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유사한 상황에서 했던 방식을 따르고 있다"며 "가려진 곳으로 물러나면서도 통제력을 굳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