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LH "건설사 이익 침해할까봐 못 알려드려요"

입력 2019-12-19 10:42
수정 2019-12-19 11:19
여전히 높은 공공정보 문턱
건설사별 임금체불 자료 요청하니…
LH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커 알려드릴 수 없어"
같은 자료 국회의원실 통해선 받을 수 있어
고용부도 상황은 비슷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2주안에 알려드려요.

정부, 지자체, 공사·공단의 자료를 한 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 통로가 있습니다. 바로 '정보공개 포털'입니다. 포털이라는 이름답게 해당 홈페이지에서는 수많은 공공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자료 생산자(정부, 지자체 등)를 선택하고, 원하는 내용을 기재한 뒤 전송하면 됩니다. 가령 '국토교통부 공무원의 출장내역'이 궁금하다면, 청구기관에 국토부를 선택하고 "공무원 출장사례와 소요 비용을 알려주세요"라고 보내면 됩니다. 마치 '팬레터'를 쓰는 것과 비슷하죠.

언제 도착할지 기약 없는 팬레터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반드시 2주 안에 답변이 온다'는 것이죠. 국민 누구나 정보공개를 요청하면 2주 안에 답변해주어야만 하죠.



▲ 2주안에 알려드려요, 특이사항만 없다면.

제가 맡은 취재 분야는 건설·부동산입니다. 수개월 간 건설 분야와 관련해 정부와 공공기관에 집중적으로 정보공개를 요청했습니다. △어느 건설사가 벌금을 많이 부과받았는지 △안전사고는 어떤 건설사가 가장 많이 냈는지 △하자 분쟁은 어떤 아파트에서 가장 많았는지 등입니다.

하지만 2주를 지나서 받은 답변은 처참했습니다. 대부분 '알려줄 수 없다'라는 대답이었기 때문이죠. 앞서 "2주안에 답변해준다는 건 뭐냐?"고 되물으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2주 안에 답변은 해줍니다. 단,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도 답변에 포함됩니다.

국민이 궁금하다고 해서 모든 정보를 공개할 수는 없을 겁니다. 보안 문제도 있을 테고 개인정보가 포함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최근에 정보공개 요청을 거부당한 이유가 보안이나 개인정보 등 '특이사항'에 포함되는지가 의문일 뿐입니다. 아래에서 조금 더 살펴보죠.



▲ LH "이익을 침해할 수 있어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요청하신 내용은 이익을 침해할 수 있어서 공개할 수 없습니다." 가장 많았던 답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료는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서 알려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거절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지난달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LH가 발주한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건설사별 임금체불 건수와 신고액’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이 자료를 받으면 어느 건설사가 임금을 제때 주지 않았는지, 임금체불이 추이는 어떤지를 파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알려줄 수 없음'이었습니다. LH가 거절 사유로 든 규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7호: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통상 '영업 비밀'은 원가, 특허, 보유 기술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건설사별로 임금체불이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경영·영업상 비밀로 볼 수 있을까요?



▲ "국회의원실 통해서 알아보시죠…"

의아했습니다. 비공개 처리를 한 LH 관계자에게 전화했습니다. "건설사별로 임금체불이 얼마나 발생했는지가 경영상 비밀인가요?"

그랬더니 받은 답변이었습니다. "임금체불 자료를 저희가 공개해서 기사화가 되면 건설사로부터 민원이 많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나중에 입찰에 참여할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함께 덧붙인 답변이 기록적이었습니다. "요청하신 자료를 국정감사 때 모 국회의원실에 제공했습니다. 해당 의원실로 연락해보시는 것은 어떨지…"

▲ 국회는 되고 국민은 안되나요?

또다시 의아했습니다.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면서 국회의원실에는 제공했다고?' 그래서 해당 의원실 보좌관에게 전화했습니다. "혹시 LH로부터 임금체불과 관련한 자료를 받으셨나요?"

이틀 뒤, 저는 원하던 자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수년간 건설 업체의 임금체불 건수,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건수가 빼곡히 담겨있었습니다. 정보공개 시스템을 통해서는 2주를 꼬박 기다려도 받을 수 없던 자료가, 이틀 만에 의원실을 통해서 들어온 겁니다. 공공 정보의 문턱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이번엔 어느 의원실을 찾아야 할까요…"

비슷한 사례는 공공기관뿐 아니라 정부 부처에서도 나타납니다. 지난달 고용노동부에 '건설사별 과태료 부과 금액'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건설사들이 징계를 받고, 어느 업체가 과태료 처분을 가장 많이 받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마찬가지로 돌아온 답변은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알려줄 수 없다"였습니다.

이미 법적인 판단을 거쳐 과태료가 부과됐는데 이마저도 알려줄 수 없다니요. 벌금과 과태료마저 경영상 비밀로 봐야할까요? 이번엔 어느 의원실을 통해 자료를 수소문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