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자금 18조 풀려·국내주식 12.5조 투자...회수 가능성은

입력 2019-07-07 08:54
수정 2019-07-07 13:44
대일적자 54년째 누적 700조...무역적자국 대부분 산유국
비산유국 日 적자 왜 최대 규모인가
국내에 풀린 일본계 은행의 자금이 18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계 자금의 상장주식 보유 물량도 12조원을 넘는다.

일본의 보복 기조가 이어질 경우 어떤 형태로든 국내 금융시장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일본계 은행 국내 총여신 18조원

7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미쓰비시파이낸셜그룹(MUFG)과 미쓰이스미토모(SMBC), 미즈호(MIZUHO), 야마구치(Yamaguchi) 등 일본계 은행의 국내 총여신은 18조3천억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의 총여신 규모인 77조9천억원의 27%에 달한다. 중국계 은행(34.3%)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일본계 은행의 입지가 작지 않다는 의미다. 본국에서 저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한 일본계 은행이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금리를 제공하므로 기업 입장에서도 매력 있는 자금원이다.

일각에서는 일본계 은행의 직간접적인 여신 규모가 69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자금은 국내 은행과 기업,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계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다.

일본계 은행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로 대외 익스포져를 늘려왔다. 지난해 9월말 기준 대외 익스포져가 4조6천억달러로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많다. 일본 내 마이너스 금리와 자국 경제의 저성장 때문에 해외투자를 늘린 결과다.

국제금융센터는 일본이 대내 요인과 글로벌 시장 여건 변화 등을 감안해 이런 자금을 점차 회수할 소지가 상당하다고 지난 2월 예상한 바 있다.

올해 들어 일부 일본계 은행의 국내지점이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을 거부하거나 신규 대출을 줄이는 등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최근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와 관련해 일본계 은행들이 즉각 행동에 나서는 상황은 아니나 대외 익스포져 축소 등 동향과 맞물리면서 한국에서 회전시키는 일본계 자금의 규모나 속도를 줄일 소지가 다분하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일본계 은행이 당장 움직이지 않겠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의 금융시장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업계는 주식시장에 들어온 일본계 자금의 방향성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 일본계 자금, 국내 상장주식 12.5조 원 보유

금감원은 5월말 현재 일본계 자금이 보유한 상장주식 가치를 12조4천710억원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는 전체 외국계 자금의 2.3%로 미국과 영국 등에 이어 9위다.

주식시장에 들어온 자금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데다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가능성도 작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드물다.

정부는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여타 분야로 확산할 가능성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은행권 등이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금융 분야로 확산한다손 치더라도 일본계 자금이 100% 모두 끊길 것 같지는 않다"면서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자금을 차환하는 과정에서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라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한일수교 이후 54년간 6,046억 달러(약 708조원) 대일 적자

한편 6일 한국무역협회(KITA)와 관세청의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1965년부터 2018년까지 54년간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은 총 6천46억달러(약 708조원)로 집계됐다.

한일 양국은 1965년 청구권 협정을 체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처음으로 교역을 시작했다. 당시 대일본 무역적자액은 1억3천만달러였다.

이후 한국의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적자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4년에는 12억4천만달러, 1994년에는 118억7천만달러로 뛰었다.

1998∼1999년 외환위기로 주춤하던 적자액은 2000년대 들어 다시 100억달러대를 회복했고 2010년에는 361억2천만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후로 다소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200억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대일본 무역적자액은 세계 각국과 비교하더라도 가장 크다.

지난해 대상 국가별 무역수지 적자액을 비교한 결과 일본이 240억8천만달러로 가장 컸고, 사우디아라비아(223억8천만달러), 카타르(157억7천만달러), 쿠웨이트(115억4천만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국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원유 수출국이다.



◇ 10대 무역수지 적자국 대부분 산유국...일본만 아냐

산유국도 아닌 국가인 일본과 교역에서 이처럼 유독 적자가 발생하는 데는 기술력 문제가 있다.

한국은 그간 소재·부품 기술력을 일본에 의존한 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몸집을 키워왔다.

지난해 품목별 무역수지를 따져 보면 원자로·보일러·기계류 수입으로 85억7천만달러의 적자가 발생했고 전기기기·녹음기·재생기에서 43억3천만달러, 광학기기·정밀기기 등에서는 35억7천만달러의 적자가 났다.

특히 반도체 디바이스, 전자집적회로 제조 기계, 전자기기 프로세서·컨트롤러 등이 무역적자의 주요인으로 꼽혔다.

대부분 장시간 축적한 기술력이 있어야 하는 부품·소재 제품으로, 공급 점유율도 압도적이다.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으로 선정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리지스트(감광액)는 전 세계 공급량의 90%가 일본산이다.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는 70%가 일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반면 우리가 흑자를 내는 품목은 광물성 연료(31억9천만달러), 천연진주·귀금속(5억6천만달러), 어류·갑각류(3억7천만달러) 등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분야다.

한국이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에서 벗어날 방안은 결국 기술력 강화를 통한 부품·소재 국산화와 수입선 다각화로 귀결된다.

이미 당·정·청은 반도체 소재부품 산업에 매년 1조원씩 집중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수출규제 품목 3가지를 비롯해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핵심 부품·소재·장비를 국산화하기 위한 방안을 이달 중 발표할 계획이다.

다각화는 일본 업계에서도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선례도 있다. 2010년 중국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 분쟁으로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규제했다.

당시 일본의 희토류 대중 의존도는 90%에 달했지만, 일본은 호주·베트남·카자흐스탄·인도 등지에서 희토류 개발권을 확보해 의존도를 50% 아래로 낮춘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이 대체 공급처를 찾게 되면 일본 부품 소재업계에는 타격이 될 수 있다.

다만 일본을 대체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려면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디지털전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