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에서 인간의 모낭 세포를 배양해 새 머리털이 나게 하는 기술을 미국 컬럼비아대 과학자들이 개발했다.
피부 이식을 거치지 않고 순전히 실험실에서 인간의 모낭 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한 건 처음이다. 향후 탈모 환자를 위한 이식용 모발 공급과 발모 약물 개발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컬럼비아대 어빙 메디컬 센터의 안젤라 크리스티아노 피부과 교수팀은 최근 이런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25일(현지시간) 온라인( 링크 )에 공개된 보고서 개요에 따르면 이번 연구의 관건인 모낭 조직 배양에는, 생체 모방 원리를 응용한 3D 프린팅 기술이 활용됐다.
생쥐의 모낭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새털이 나게 하는 기술은 수년 전에 개발됐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인간의 모발에는 이 기술이 통하지 않았다.
연구팀이 3D 프린팅 기술에 눈을 돌린 건, 폭이 0.5㎜밖에 안 되는 가늘고 긴 플라스틱 주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제1 저자인 에르빌 아바치 박사는 "기존 기술로는 그렇게 가는 돌기 모양을 만들 수 없다"면서 "혁신적인 3D 프린팅 기술 덕에 연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먼저 지원자의 모냥 세포를 이 주형 안에 넣고 케라틴을 생성하는 세포로 그 위를 덮었다.
주형의 끝을 막은 세포들에는, 모발 성장을 자극하는 JAK 억제제 등이 첨가된 성장인자 혼합제가 영양분으로 공급됐다. 그렇게 하고 3주가 지나자 주형 안에 모낭이 생기고 새 머리털이 나 자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 기술은, 머리털 복원 수술을 받으려는 남성 탈모증 환자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티아노 교수는 "대규모로 모발을 길러내는 농장 같은 걸 만들 수 있게 됐다"라면서 "여러 올의 머리카락을 한꺼번에 길러내서, 탈 없이 자라게 유전공학으로 처리한 뒤 환자 본인의 두피에 이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방법으로 모발 복원 수술을 받으려면 후두부에서 약 2천 개의 모낭을 떼어내 이식해야 한다. 대개 이 방법은 탈모가 오래되고, 후두부에 충분한 머리털이 남아 있는 남성들에게 쓰인다.
반면 새 기술은 머리털이 빠지거나 가늘어져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희소식이 될 수 있다. 현재 미국에는 이런 여성이 3천만 명가량 있다고 한다.
발모 효과가 기대되는 물질을 한꺼번에 여러 개씩 테스트해야 하는 제약업계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사실 이런 방법으로 찾아낸 발모제는 아직 하나도 없다. 검사에 쓸 모발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형탈모 치료제로 승인된 약물이 두 종 있지만 모두 다른 질환에 쓰는 용도로 개발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