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메이커스] 15살 떡볶이 소녀에서 '떡 장인'으로

입력 2018-02-01 10:54
홍연우 라이스블록(홍군아 떡볶이) 사장
'홍군아 떡볶이'의 홍연우 사장이 떡볶이 떡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13년10월부터 이다. 그 때 홍 사장은 중학교 3학년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열다섯 살 소녀가 떡볶이 떡에 인생 건 이유는 단순하지만 심오했다.

◇ 홍군아 떡볶이의 부활

시작은 오빠였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작은 치킨 가게 귀퉁이에 떡볶이 가게를 낸 오빠. 그래서 떡볶이 이름도 '홍양아~'가 아니라 '홍군아~' 이다.

하지만 열아홉 살의 오빠는 '질풍노도' 폭풍 같은 시절을 보냈고, 보다 못한 여동생 홍연우 양이 대타로 나섰다. 그런데 15살 홍 양, 떡만 보면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오전에 떡이나 튀김을 만들고 오후에 손님들께 판매 했는데, 정말 굉장했어요. 그 동안 의미 없이 학교를 왔다 갔다 했는데 떡을 보는 순간 눈이 확 돌아가는 거에요. 학교에서는 느끼지 못한 열정을 찾았어요."

3개월 정도 떡볶이를 팔다 보니 떡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마음에 드는 떡, 순수하게 쌀로 빚었지만 밀떡 보다 부드럽고 쫄깃한 상상 속의 떡을 직접 만들고 싶었다. 결국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중학교 졸업일수만 채우고 학교를 그만 뒀어요. 그 때는 기분이 이상했어요. 친구들도 만나지 못 하고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학교를 그만둔 것은 옳았어요. 제가 원하는 일에 저 자신을 집중한 것이죠."

원하는 떡을 개발할 때까지 분식집도 문을 닫기로 했다. 친구와의 연락도 끊었다. 소문난 식당이나 대학교수들을 찾아가 비법을 물었지만 문전박대 당했다. 홍 양은 하루에 20kg 짜리 쌀 한 포대를 쏟아 부으며 만들고 또 만들었다. 무려 3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실패가 거듭됐어요. 실패할 때 마다 속상해서 그만두고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있기도 했어요. 하지만 학교까지 그만두고 시작한 일인데 싶어서 또 다시 일어나서 일 하곤 했어요. 떡부터 소스까지 떡볶이 한가지 제품을 만들기 까지 딱 3년 걸렸어요."

별의별 쌀 품종에 발효 방법을 다 써 봐도 2% 부족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수분량을 조절했더니 꿈에 그리던 쌀떡이 나왔다. 2017년1월, 꿈의 쌀떡이 나온 날 홍 양은 가족들과 함께 회식 했다. 축하주는 미성년자인 홍 양 대신 아빠가 마셨다.

홍 양이 개발한 떡은 아기 살결 처럼 부드럽다는 뜻으로 '애기떡'이라 부르기로 했다. '홍군아 떡볶이'가 부활하는 날이었다.



◇ 보통 사람들이 모아준 1,000만원

15살 떡볶이 소녀는 19살 가래떡 전문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10대 소녀에게 판로를 찾고 자금을 구하는 것은 여전히 막막한 일이었다.

홍 양은 부모님의 권유로 이름도 생소한 '크라우드펀딩'에 도전했다. 목표 금액은 100만원. 기적이 일어났다. 391명의 투자자들이 목표액의 10배가 넘는 1,147만원을 투자했다.

"믿을 수 없었어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돈을 넘어서 제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신 거잖아요. 그 많은 분들이 떡 때문에 투자해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겪은 수많은 실패를 위로하고 응원해 주신 거잖아요."

와디즈의 크라우드펀딩에서 대박이 터지자 홈쇼핑과 온라인쇼핑에서 '홍군아 떡볶이'를 찾기 시작했다. 홍 양은 분식집을 다시 여는 대신 포장 떡볶이를 공급하는 제조회사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홍 양은 크라우드펀딩 자금으로 월 60만원에 허름한 건물을 얻어 독립하고, '라이스블록'이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일반 사업자로 일 하면 무시하는 분들도 있고, 더 성장하는데 한계도 있어서 법인을 만들었어요. 회사 이름은 라이스블록인데, 쌀과 블록의 합성어로 다양한 쌀 음식을 만들어 블록처럼 쌓아간다는 의미가 있어요."

라이스블록의 직원은 홍 사장 단 한 명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주문이 밀려들고 일손이 부족해 지자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를 직원으로 채용했다. 부모님의 치킨 가게는 잘 되지 않아 두 달 전 문을 닫았다. 3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최근 들어 매출이 월 3,000만원으로 늘었어요. 목표는 월 1억원 달성이고요. 엄마는 생산, 아빠는 포장, 오빠가 배송을 맡고 있어요. 저는 이것저것 다하고요. 자금 사정 때문에 치킨 가게를 접은 부모님이 언젠가는 재기하시도록 돕고 싶어요."

◇ 떡을 만드는 특별한 이유

19살 가래떡 전문가는 20살의 쌀요리 회사 사장으로 거듭났다. 작은 체구의 홍 사장은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다. 위생 때문이다. 친구들과 수다 떨 거나 남자 친구와 데이트 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달랑 4명의 사장과 직원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떡을 뽑고 포장하고 배송한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른들의 시선이었어요. 그 분들은 제가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앞으로 취업도 못 하고 결혼도 못할 거라고 하셨어요. 그 때마다 화 나고 억울했어요. 하지만 이제 저는 경쟁력을 조금 갖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극복해 냈어요."

세상에는 수많은 떡이 있지만 홍 사장이 집중하는 것은 가래떡이다. 가장 기본적인 떡, '떡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떡을 왜 만드냐고요? 떡을 만들면 즐거워요. 힘들 때도 많지만 즐거움이 더욱 커요. 찾아보면 더 즐거운 일도 있겠지만 지금 환경에서는 이것이 저의 최선인 것 같아요. 이 것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요."

<'THE메이커스'는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창작자, 장인 등 메이커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