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공무원들의 기업 반감이 다른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고 미래세대인 학생들의 반기업 정서는 최근 들어 최고조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경제TV가 진행한 반기업정서 여론조사와 과거 반기업정서 관련 논문들을 살핀 결과 공무원들의 기업에 대한 반감은 줄어들지 않거나 더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여론조사에 응답한 공무원들은 기업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 50.28%(비호감 24.10%, 매우비호감 26.18%)가 기업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비호감이라고 답했습니다.
전체 응답자들의 비호감 답변 비율인 55.11% 보다 소폭 낮지만 공무원들은 숨겨 놓은 기업 비호감도 측정 질문에 자신들의 잠재된 기업 반감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여론조사에서 기업반감을 간접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설계된 질문인 '기업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와 '기업 이윤은 어디에 사용되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공무원들은 다른 어떤 직종보다도 높은 비율로 사회환원이라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기업의 존재 목적에 대한 답변의 경우 이윤창출(21.22%)과 국가경쟁력강화(22.09%)보다 공무원들은 사회환원(27.7%)을 더 많이 선택했고, '기업이윤을 어디에 써야하느냐'는 질문에는 무려 60.54%가 사회환원 등을 통한 일반 대중에게 사용해야 한다는 응답을 내놨습니다.
여론조사 전체 응답자들이 기업의 존재 목적으로 사회환원을 택한 비율은 22.73%. 공무원들은 이보다 5%p 이상 높은 비율로 기업존재 목적을 사회환원으로 택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윤 사용처에 대해서는 사회환원을 택한 비율이 60.54%로 전체 여론조사 응답자들이 택한 비율(50.2%)를 10%p나 앞질렀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가 공무원들의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잠재된 반감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이들은 “공무원 등 몇몇 직종의 근무자들은 직업의 특성상 이런 기업에 대한 반감을 묻는 설문 같은 직접적인 질문에 다소 보수적 답변을 내놓는데 숨겨진 질문에는 거부감 없이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공무원의 높은 기업반감...“한국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
비단 이번 여론조사에서만 공무원들의 이런 기업반감이 드러난 것은 아닙니다. 이번 취재를 하는 동안 과거 기업 호감도와 관련된 여러 논문과 연구자료를 살펴보는 과정에서도 공무원들의 높은 반기업정서를 뒷받침 할 만 한 자료들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이 내놓은 '기업 및 기업인에 대한 한국적 인식의 특징과 개선과제' 보고서에도 다른 직업군에 비해 공무원의 기업가에 대한 반감 형성 기여가 상당히 높다는 연구조사가 들어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여러 직군들의 기업에 대한 반감도를 측정하고 이런 반감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가를 교차분석을 통해 검증했습니다. 영향도는 수치화해서 나타냈는데 수치가 클수록 해당 변수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풀이합니다.
< '기업 및 기업인에 대한 한국적 인식의 특징과 개선과제' -황인학,강원 보고서 발췌>
이 보고서에 나타난 공무원들의 기업 전반에 대한 반감 기여도와 대기업 그리고 기업인에 대한 반감 기여도는 각각 0.94, 1.42, 2.06으로 모두 양의 값이 나왔습니다. 더구나 조사 대상자 중 자신이 진보 성향을 가졌다고 답한 사람들의 기업에 대한 반감 기여도(기업전반 0.92, 대기업 1.26, 기업인 1.44)를 웃돌았습니다.
과거 2002년에도 이용규·이성로 교수가 연구한 ‘규제개혁에 대한 관료의 인식’ 보고서에도 "민간기업과 함께 한국경제를 이끌고 가야할 공무원이 기업가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 하다"라는 언급이 나옵니다.
김광두 서강대학교 석좌교수이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단순 여론조사만으로 공무원들의 기업에 대한 반감이 높다고 단정하기 힘들지만 보다 심층적인 조사를 통해 이유 등을 분석해봐야할 사안”이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김 교수는 “만약 공무원들의 기업에 대한 반감이 실제로 높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기업 활동을 하는 것을 관리하는 게 공무원인데 똑 같은 규정이라도 반감이 있다면 더 엄격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지장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관료의 역할은 지휘자에서 지원자로 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공무원 사회는 이런 흐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기업 본래의 존재 목적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발전의 도구로서 기업을 활용하려고만 하는 개발독재 시대의 인식 다시말해 기업에 대한 규제와 혜택이 자신들의 본연의 책무와 권리로 공무원들이 생각한다면 미국처럼 시장을 통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발전하는 시스템의 구축은 요원해질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반기업 정서에 취한채 취업준비하는 이율배반의 대학생
이번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젊은 세대 특히, 학생층의 반기업 정서의 수준은 심각합니다.
기업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 학생들은 10명 중 한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기업에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비호감이라고 답변한 비율이 56.23%나 됐고 매우 비호감이라고 답변한 학생들도 30.1%나 나왔습니다.
전체 여론조사 답변자 비호감(비호감과 매우비호감을 더한) 비율이 55.11% 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대중들의 기업에 대한 비호감 보다 학생층의 기업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강한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모르겠다고 답변한 학생들을 제외하고 호감을 나타낸 학생들의 비율이 호감(3.65%)과 매우호감(4.43%을 더해 1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번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된 학생층의 높은 기업 반감은 단순히 젊은세대니 그럴 수 있지 정도로 인식할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물론 최근 최순실 사태 등이 기업에 대한 반감을 일시적으로 고조시켰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상황이 심각합니다. 학생들의 반기업 정서는 결국 자신들이 향후 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 또는 기업을 세워 경영하는 기업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아이러니 합니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정신분석학적으로 절망의 상황을 어떤 대상을 통해 풀어내는 일종의 투사(projection)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김 교수는 “희망이나 낙관을 증명해 주거나 증거 할 일들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살아갈 힘이 없어지는데, 최근의 여러 현상들이 학생들에게 그런 절망감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절망의 상태에 빠지면 어떻게든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싶어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방식 중 하나가 투사(projection)”라는 설명입니다.
다시말해 “내가 이렇게 절망적인 이유가 자신일 수도 있고 타인일 수도 있지만 주변에 나와 상황이 아주 다른 희망도 있고 잘 지내는 사람이 보이면 그것이 타겟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바로 최근 그 대상이 됐다는 풀이입니다.
김 교수는 하지만 학생들의 높은 반기업 정서를 단순히 절망감을 풀어내는 심리적 풀이 방법인 투사로만 설명되는 것에는 경계감을 내비쳤습니다. 투사라는 심리적 풀이 방법은 사람들이 절망상황에 빠지면 당연히 하게 되는 심리적 행동일 뿐 실제 학생층이 절망감에 빠지게 만든 원인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동력 상실로 대학졸업후 갈 곳이 없어진 절망감, 그리고 최근 드러난 투명하지 못한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민낯이 젊은 세대의 반기업 정서의 원인이며 우리가 주목해야할 대상이란 이야기입니다.
한국경제TV 기획취재팀 김치형·조연·신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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