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어렵다. 지표경기의 대표인 성장률은 올해 4분기에는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질 위험에 놓여 있다. 체감경기 판단지표인 신경제고통지수(소비자물가상승률+실업률-성장률)은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하다. 더 우려되는 것은 그리스에서 나타났던 ‘일곱 가지 위기 징후군’이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마냐냐(Manana) 경제관’이다. 마냐냐는 스페인어로 ‘내일’이라는 뜻이다. ‘내일은 태양만 뜬다’는 식으로 한국 정책당국자의 경제관이 너무 낙관적이라는 지적이다. 외환위기 당시 경제인식의 위기였던 강경식 경제팀의 펀더멘털론(위기는 닥치는데 경제여건은 괜찮다는 주장)과 같은 시각이다.
경제현안을 풀어가는 데에는 정확한 경기인식부터 선행돼야 한다. 너무 낙관적으로 보면 정책실기와 땜질식 정책처방으로 직결된다. 전임자와 달리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는 ‘우리 경제가 위기다’라고 못 박고 있다. ‘적임자’라는 평가와 함께 앞으로 추진될 경제정책에 기대를 갖게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삶은 개구리 징후군(Boiled Frog Syndrome)’에 빠졌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이 용어는 미국 코넬대에서 뜨거운 물에 넣은 개구리는 살고, 천천히 온도를 올린 물에 넣은 개구리는 죽었다는 비이커 실험에서 유래됐다. 환경변화 적응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많이 인용된다.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처음 제시된 4차 산업혁명 물결이 1년도 못되는 사이에 거세다. 4차 산업혁명 주도업종은 성수기까지 도달하는데 3년밖에 안 걸린다. 이 때문에 선도자에게 모든 이익이 집중된다. 미국(AMP), 독일과 중국(Industry 4.0), 일본(재흥전략) 등에서 보듯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는 열기에 비해 한국은 너무 미온적이다.
구조조정과 관련해 ‘코브라 역설(Cobra Paradox)’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지적도 가슴 깊이 파고든다. 영국의 인도 식민지 시절 골치 아픈 코브라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지급했던 보조금이 오히려 늘렸다는 정책실패에서 유래됐다. 미봉책은 문제 해결보다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자주 활용된다.
외환위기 이후 수없이 경험했듯이 구조조정의 성공열쇠는 ‘타이밍과 고통분담’ 여부다. 대우해양조선처럼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정책시기를 다 놓치고 누구도 희생하는 길을 선택한다면 후에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국민 부담만 늘어난다. 외부 불경제(사적 비용보다 사회적 비용이 큰 경우)의 전형이다.
‘새로운 넛 크래커(New Nut Cracker)’ 국면에 빠졌다는 지적도 피부에 와 닿는다. 넛 크래커는 1990년대 저임의 중국과 기술의 일본 사이에 낀 한국 수출상품의 위상을 꼬집는 말이었다. 새로운 넛 크래커는 범용 표준화된 기술은 중국, 첨단기술은 일본이 압박하는 현상으로 오히려 극복하기는 더 어렵다.
새로운 넛 크래커 현상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과 창업보다 인수개발(M&D=R&D+M&A)로 경쟁력 확보기간을 단축시켜야 가능하다. 단기적으로는 환율이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통상마찰과 원화 절상요인인 과다한 경상수지흑자부터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당면한 강남투기 지역의 본질을 잘 지적한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도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투자전략가인 스리 쿠르마는 ‘강남 아파트에 거품이 낀 것은 알고 있지만 더 사줄 사람이 있다고 믿음 때문에 매입한다’고 주장한다. 1993년 이후 서울아파트를 집중 연구해온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강남 불패론’과 같은 시각이다.
지난 3일 투기과열지역의 아파트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이 발표됐다. 강남아파트 투기가 부동산 활성화를 통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실패 결과라는 비판을 너무 의식한 ‘본때를 보여 주기식 대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투기의 본질인 기대수준을 낮춰 연착륙시킬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경제주체의 위기인식과 관련해 두 가지 경고도 눈에 띤다. 하나는 제임스 버크의 명저에서 유래된 ‘핀볼 효과(Pinball Effect)’ 위기다. 서로 연결돼 있는 볼링 핀에 비유해 위기징후는 도미노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위기징후라도 무시하다 보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빠져든다는 경고다.
다른 하나는 다가오는 위기를 애써 외면하는 ‘무각통증(Disregard)’ 위기다. 국회의원은 당리당략으로 경제입법을 미룬다. 노조는 소속 기업이 망해도 거리로 뛰쳐나오다. 있는 계층은 위기가 닥쳐도 ‘나는 괜찮겠지’ 하는 심리가 모두 해당한다. 모든 주체가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프로보느 퍼빌릭코(Probono Publico,공공선)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