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소리' 이성민, "딸은 특별한 존재" [인터뷰②]

입력 2016-01-21 20:04
수정 2016-01-22 08:03


영화 '로봇, 소리'에서 이성민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보통의 중년 남자, 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유연하지 않은 캐릭터 '해관' 역을 맡았다.

영화는 1990년 어느 날 해관(이성민 분)과 어린 딸 유주(채수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렸을 때 그 누구보다 애틋했던 부녀의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갈등 관계로 변한다. 이들의 갈등 상황이 고조됐을 때 해관은 유주를 잃어버렸고, 해관은 실종된 딸을 찾아 10년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닌다.

영화에는 딸의 꿈을 인정하지 않는 아빠, 아빠 몰래 집을 팔고 친구에게 넘긴 딸, 10년 동안 딸을 찾아 헤매는 아빠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성민은 영화 속 해관과 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딸에 대한 그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었다. <!--StartFragment--><!--StartFragment--><p>▶'로봇, 소리'는 아빠와 딸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데, 부녀의 사이가 밀착된 관계였다가 멀어지는 것에 공감했어요?</p><p><!--StartFragment-->"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어요. 애가 16살인데 딱 그 시기인 것 같거든요. 옛날에 선배나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어릴 때는 '삼촌' 하면서 따르던 애들이 사춘기가 되면 '안녕하세요' 하고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 애도 저렇게 되겠구나 생각했죠. 우리 딸도 어릴 때 맨날 안기고 그랬던 삼촌들한테 '안녕하세요' 하고 잠시 있다가 들어가곤 해요. 그래도 다행인 건 저하고는 아직 어색함이 없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내가 재워주는 걸 좋아했고, 스킨십도 전혀 거리낌 없이 해요. 그런 면에서 딸에게 고마움을 느끼죠."</p>

<!--StartFragment--><p>▶16살이면 딸한테 굉장히 힘든 시기 아닌가요?</p>맞아요. 작년에 중2였는데 정말 격렬한 시기였어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 근데 뭐 다 그런 시기가 있는 거 같아요. 중년 갱년기의 호르몬 변화랑 사춘기랑 비슷해요. 그 시점에 대해서 애와 그런 얘기를 했어요. 너의 시기는 마치 엄마가 갱년기를 겪는 시기와 같다. 그래서 아빠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니가 뭘 하고 다니는지 아빠가 알아야 하지 않겠냐 했더니 사과를 하더라고요.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 바로 사과를 해요. 그런걸 보면서 또 한 단계 성장해가는구나 생각하죠. 딸하고 안 멀어졌으면 좋겠어서 결혼해서도 같이 살자고 했더니 싫다고 하더라고요. 좀 옆에 두고 있고 싶은데. 딸 하나라서 그런가 봐요."

▶영화 속 딸 유주의 꿈은 가수인데 딸의 꿈은 뭔지 궁금해요.

"우리 딸은 아직 꿈이 없어요. 저도 뭐 꿈에 대해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저도 늦게서야 '연기를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고라고 생각해요. 가끔 뭐 바뀌죠. '피디가 되겠다' '뭐가 되겠다' 하지만 곧 현실의 벽을 깨닫게 되죠. 정직한 일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쁜 일만 아니면 어떤 꿈을 꾸든 응원해 줄거에요"

▶영화에서 해관은 잃어버린 딸을 10년 동안 찾아다니는데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저도 막상 그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단순히 잃어버린 딸, 실종된 딸이 아니라 내가 그 아이한테 상처를 준 순간 걔가 사라져서 더 그러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찾는다는 거보다는 끊임없이 그 행위를 해야 내가 용서받을 거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아요. 주변에도 아직 그러고 계신 분이 있더라고요. 영화 찍을 때 그런 분을 만났는데 몇 년 동안 찾고 계시더라고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럴 수 있을지는.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아이의 어떤 흔적도 안 나왔으니까 그래서 찾아다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딸은 아직 영화를 안 봤죠? 보면 느낌이 남다를 거 같은데.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니까.

"딸은 아직 못 봤어요. 계속 소문 내리고 세뇌를 시키고 있는데, 딸이 '봐야 소문을 내지, 재미없는데 재미있다고 하면 안 되잖아' 라고 하더라고요. 요즘 아이들 참 똑똑해요. (웃음)"



▶작품 하면 딸이 학교에서 친구들 말 듣고 전해주나요?

"아뇨 제 영화나 작품에 관해서 얘기를 잘 안 해요. 어땠냐고 물어보면 잘 얘기 안 해주는데 가끔 '그 부분은 아쉽더라' 이런 얘기는 해줘요."

▶가정에서는 해관처럼 보수적이고 완고하신 편인가요?

"아뇨 서열 3위에요. 아내는 항상 1등이고 딸과 제가 2, 3위를 맡고 있죠."

▶영화 보면서 느낀 게 유주의 행동은 '저 정도면 아빠가 화날만하다'라고 생각되는 장면도 있었거든요.

"맞아요. 그러면 화나죠. 근데 영화 속 해관처럼 그 옆에 친구한테 뭐라고 하진 않죠. 딸이 잘못했으면 딸에게만 뭐라고 해야죠."

▶아버지 입장에서 딸은 어떤 존재인가요?

"딸은 아빠한테 좀 특별한 존재인 것 같아요. 싸울 때도 아들 같으면 쥐어박거나 야단을 치겠는데 딸은 야단을 치는 게 아니라 싸움이 되더라고요. 딸은 굉장히 어려워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까 결국 딸은 내 품에서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하니까 잘 보호해주고 잘 케어해줘야한다는 본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펭귄이 그 차가운 얼음 위에서 먹지도 않고 발등 위에 알을 올려놓고 부화를 기다리잖아요. 또 캥거루가 주머니에 넣고 자식을 키우는 것처럼. 자녀가 완전체가 될 때까지 보호해주는 게 부모의 본능인 것 같아요. 아이가 최대한 안전하게 잘 성장할 때까지 지켜주는 거요."

▶실제로 '소리'가 있다면 어떤 소리가 가장 듣고 싶으세요?

"옛날에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인가 집안에 할머니 잔치가 있었는데, 식구들이 많이 모였어요. 나도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 다 계셨어요. 그날 아버지가 가족들 목소리를 녹음하더라고요. 그걸 한동안 보관했었는데 없어졌어요.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그 소리를 찾아서 듣고 싶어요. 젊은 시절의 부모님과 할머니와 어린시절 나의 목소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