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소리' 지금 필요한 건 '따뜻한 말 한마디' [리뷰]

입력 2016-01-18 09:03
수정 2016-01-1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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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Fragment--><p>※이 기사에는 영화의 일부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p>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에서 192명의 사망자와 148 명의 부상자를 낸 최악의 지하철 화재 사고가 있었다.

영화 '로봇, 소리'는 이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영화는 1990년 어느 날 해관(이성민 분)과 어린 딸 유주(채수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렸을 때 그 누구보다 애틋했던 부녀의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갈등 관계로 변한다. 이들의 갈등 상황이 고조됐을 때 해관은 유주를 잃어버렸고, 해관은 실종된 딸을 찾아 10년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닌다.

매번 딸찾기에 실패해 낙담한 해관 앞에 인공 지능 로봇이 나타난다. 해관은 목소리만으로 핸드폰을 추적하고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로봇을 통해 딸을 찾을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한다.

로봇 역시 해관과 마찬가지로 아픔을 가지고 있다. 딸을 찾을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된 해관은 로봇에게 자신의 딸을 찾아주면, 로봇의 아픔도 치유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약속했다.

로봇은 해관에게 딸 유주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딸을 잃은 아비와 여정을 함께 한다. 어느샌가 로봇에게 친밀감을 느낀 해관은 로봇에게 '소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소통한다. '소리'와의 소통을 통해 해관은 자신이 몰랐던 딸의 이야기를 찾게 된다. 해관은 실종된 딸의 발자취를 쫓으며 그간 아버지인 자신이 몰랐던 딸의 모습과 대면하면서 느끼는 허탈함과 서글픔 그리고 고통을 느낀다. 해관은 '소리'와 교감하며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덜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이 영화는 억지 눈물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억지로 짜내지 않아도 해관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어느새 눈시울이 젖어있다. 이성민의 자연스러운 연기 덕분에 이 말도 안되는 판타지가 현실로 다가온다.

이희준, 이하늬의 열연도 돋보인다. 각각 국정원 요원과 항공우주연구원 박사 역으로 등장한 이들은 적재적소에서 웃음과 재미를 준다. 로봇의 목소리를 더빙한 심은경은 후반부로 갈수록 미세한 감정 변화를 보여줬다. 이 덕분에 이성민과 '소리'가 교감하는 부분도 전혀 어색함 없이 이어진다. 후반부에 국정원 직원의 손에 끌려가며 해관을 바라보는 '소리'의 눈은 기계의 그것이 아니었다. 목소리 만으로 로봇에 감정을 불어넣은 심은경이 실로 대단한 이유다.

다만 아쉬운 점은 '대구 지하철 참사' '부정(父情)', '인공지능로봇'이라는 다양한 소재를 한데 버무리려다 보니 놓치는 부분과 튀는 부분이 생긴다. 영화에서 인공지능로봇 '소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두고 미국의 요원들과 국정원이 경쟁을 벌이는 장면은 딸을 찾아 나선 애절한 부정에 젖어 있던 관객들의 몰입도에 방해가 된다 .

'소리'의 마지막 뒷모습은 그가 무엇을 하러가는지, 과연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해관의 응원 하에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해관의 딸, 유주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 살아 있을 때 딸의 꿈을 응원해주지 못했던 아버지는 딸을 매개체로 교감했던 '소리'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결국 영화는 가족들,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 지금 당장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호재 감독이 영화의 소재를 '대구 지하철 참사'로 삼은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와 시선이 나와 내 가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와 사회로 번져가길 바라서 일 것이다.

가족간의 대화가 단절돼가고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도 '소리'라는 로봇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누굴 찾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곰곰이 하게 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