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가 첫 스크린 주연작으로 ‘강남 1970’을 선택했을 때, 우려 섞인 시선이 많았다. 2009년 ‘꽃보다 남자’와 2013년 ‘상속자들’ 등 그간 재벌2세 캐릭터로 도시적인 이미지를 주로 선보였던 이민호가 거칠고 센 영화에 도전했기 때문.
넝마주이부터 건달까지 파격 변신한 이민호를 상상했을 때 떠올렸던 물음표는 영화 개봉 후 느낌표로 변했다. 반항아 느낌의 재벌 2세에 최적화 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이민호는 ‘강남 1970’으로 그 편견을 완벽히 벗어던졌다.
“시사 후에 크게 들었던 생각은 ‘기다렸다 영화하길 잘했다’였어요. 그 인물이 되기 위해 억지로 짜낸 느낌이나 무게감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은 못 받았거든요. 성숙한 느낌 날 때 영화하길 잘했다는 느낌? 연기 감정이나 상황에서 충분히 적절히 표현했던 것 같아요”
“‘강남 1970’이 장르가 분명하고 색깔이 있어서 드라마와 다른 환경에서 영화 찍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요. 영화한다면 20대 후반에 하고 싶다는 생각하고 있었어요. 언제 어느 시점에 어떤 식으로 할 거냐’가 중요했죠. 20대 후반이 기준이었고요. 많은 배우들이 영화만 하고 싶다는 생각한다고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긴 한데… 드라마에 빛날 시대에 살고 있기에 드라마도 꾸준히 하는 게 지금 환경 상황에 맞는 것 같아서 왔다 갔다 할 생각이에요”
앞서 언급했듯 이민호의 ‘강남 1970’ 도전은 파격이었다. 첫 영화 주연작으로 폭력성 짙은 청소년 관람불가 작품을 택한 것도 도전이었고, 잠깐이지만 넝마주이로 변신한 것도 도전이었다.
“이미지변신이나 그런 취지로 시작한건 아니에요. 대본은 주인 따로 있다고 하던데 ‘상속자들’ 출연 결정하고 나서 ‘강남 1970’ 대본을 받았어요. 유하 감독님이 기존에 남자 배우들과 영화를 많이 하셔서 더욱 신뢰가 가는 부분도 있었고… 타이밍이 잘 맞았어요. 다른 의도나 목적은 없었어요. 이미지 변신 목적이 있었다면 ‘상속자들’때 변신을 시도하지 않았을까요? 그 전에는 20대 때 한 살이라도 어린 모습을 하나 더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28살에는 영화 할 거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어요”
“어느 정도 흥행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흥행만을 노리고 그 부담감이 심했다면 이런 류의 영화를 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락영화나 잘 짜인 판의 영화를 택했을 거예요. 물론 이제는 흥행까지 생각해야하는 배우긴 하지만 발전이 있어야하고 공감하는 코드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흥행 안 되면 속상하겠지만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크게 부담은 없어요. 당연히 흥행했으면 좋겠죠. 300만만 넘었으면(웃음)”
‘강남 1970’ 초반 이민호와 김래원은 헌 옷이나 헌 종이, 폐품 등을 주워 생계를 꾸려나가는 넝마주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다 헤진 옷을 입고 얼굴엔 검정칠까지 한 그야말로 거지꼴. 허나 이민호는 이마저 빈티지룩인 듯 소화해내 원성 아닌 원성을 들어야했다.
“스스로 옷을 못 입는데 못 입는 줄 모르듯이 분장하고 있어서 추한지 안 추한지 객관성을 이미 잃었어요. 그 당시에는 불쌍해 보이고 없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으로 비춰졌을 때 어색하더라고요. 그 당시엔 만족스럽게 흘러가듯 찍었어요. 넝마주이 하는데 멋있어 보일 수 없잖아요. 멋있어 보이려고 했다면 정신 나간 놈이죠(웃음)”
이민호는 ‘강남 1970’에서 가진 건 몸뚱이 하나, 믿을 건 싸움 실력뿐인 넝마주이 출신 김종대로 분했다. 잘 살고 싶다는 꿈으로 한 방을 노리며 강남 개발 이권 다툼에 맨 몸으로 뛰어드는 밑바닥 청춘의 모습을 그렸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 20대들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남자라면 좀 더 심할 것 같아요. 이때는 그것들을 풀어갈 방법이 적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고요. 지금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선택의 폭이 넓다면 당시는 선택의 폭이 없었고 일방적이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출구 없는 막막함, 처절함을 중점으로 표현하려 했어요”
“20살에서 24살이 제 인생의 암흑기였어요. 어두웠던 시기라 종대랑 비슷한 맥락의 감정을 느꼈을 때가 있었죠.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많이 느꼈어요. 당시 교통사고로 1년 간 병원에 있었어요. 두 명이 죽는 교통사고였죠. 가장 밝고 좋을 수 있는 시기에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고 밖에 나와서도 빨리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고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종대만큼의 깊이는 아니었지만 깊은 고민을 하고 답답함을 느꼈던 시기예요. ‘꽃보다 남자’하기 전까지. 물질적으로도 그렇고… 종대 감정을 공감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에 이은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 완결편인 ‘강남 1970’은 마지막을 장식하는 만큼 더 세고 더 거칠어졌다. 당연히 현장 분위기도 밝고 즐겁진 않았을 터.
“심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어요.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본 입장에서 그렇게 크게 ‘징그럽다, 잔인하다’는 느낌은 크게 못 받았어요. 사실 그 순간이 잘 생각나지 않아요. 사람이 진짜 화나면 ‘눈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그런 경험을 해본 것 같아요. 찌르고 나서 손으로 입가에 피 닦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행동을 했던 게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평소 밝고 장난기 가득한 성격의 이민호는 어두운 현장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 DJ를 자처해 노래를 틀기도 했다.
“그때그때 기분을 대변해줄 수 있는 노래들을 들었어요. 선혜(설현 분)와 장면을 찍을 땐 발라드 위주의 음악을 들었다면 몽타주 찍고 그럴 땐 센 거, 블랙힙합이나 웅장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노래를 틀었어요. 그때 힙합에 꽂혀있어서 힙합도 많이들은 거 같다. 현장이 칙칙해서 노래라도 안틀면 숨 막힐 거 같아서(웃음)”
인터뷰 당시 개봉을 며칠 앞두고 있던 이민호는 빨리 관객들에게 영화를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관객들과 밀당하는 느낌이라며 종대가 영등포 입성하듯 깨 부시고 싶다는 농담을 던졌다.
“드라마는 한창 정신없이 찍다보면 시청률이 나오고 끝나있는데 영화는 다 찍어놓고 다 편집하고 다 홍보하고 그러고 시작하니까 답답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밀당 당하는 느낌?(웃음)”
이민호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강남 1970’은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몰이 중이다.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힌 이민호. 앞으로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안 그래도 이제는 1년치 계획을 미리 짜야하는 상황이라 올 한해를 어떻게 할 건지 스케줄 정리를 했어요. 영화가 밀리면서 작년에 작품이 없는 배우가 됐어요. 꾸준히 한 작품씩 하던 배우였는데… 올해는 두 작품을 하고 싶어요. 한다면 중반기에 영화 하반기에 드라마?일단 영화는 찍어놓으면 공개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비슷하게 나올 거 같아서(웃음)”
(사진 = 최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