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없는 엔저' 원·엔 1년내 800원 간다?··대책없는 당국은 고심

입력 2014-09-28 12:00


정부는 엔저(엔화 약세)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엔화 환율 자체가 원·달러에 연동한 재정환율이어서 뾰족한 정책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28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당국은 엔저의 하강속도가 우려할만한 수준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로 인한 실물경제의 영향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3년차로 접어든 엔저 현상이 최근 들어 심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환율에 과도한 쏠림 현상이 있으면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과거 엔저 현상의 추이와 영향을 점검하는 동시에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따른 대응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며 "다만, 기업들도 자구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원·엔 환율의 지속적 하락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최근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 가치가 현재보다 더 떨어지면 한국산 제품의 수출 경쟁력 저하 등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은 일본 기업들이 엔저를 기반으로 수출단가를 인하하는 등의 공격적인 태세를 보이지는 않고 있지만 본격적인 가격 경쟁에 나서면 한국산 제품의 수출은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국내에 원·엔 시장이 없는 만큼 아직 명시적으로 내놓을 만한 뾰족한 대책은 없는 실정이어서 당국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가 열린 호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본의 양적완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원·엔 환율은 재정환율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답답함을 내비쳤다.

원·엔 재정환율은 원·달러, 엔·달러 환율을 통해 간접적으로 계산된다.

과도한 엔저가 진행되면 엔저의 폭 만큼 국내 원·달러 시장에 개입해 달러에 대해 원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는 있지만 미국 등 주변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따라서 기준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지만, 원화는 국제통화가 아니어서 금리 인하가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고 부채 증가 등 부작용도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출 기업들을 상대로 원가 절감과 품질 향상을 강조하면서 환율 변동의 위험관리 강화를 당부하고 있다.

당국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환율을 조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자금 애로를 겪지 않으려면 환변동보험에 많이 가입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환율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기업들이 보험 가입을 주저하고 있어 피해가 커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세계 메이저 금융사들은 엔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재정환율)이 향후 1년 안에 800원대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영국 '더 뱅커(The Banker)'지 선정 세계 30대(자기자본 기준) 은행 가운데 원·달러와 엔·달러 환율을 9월 중 동시에 전망한 투자은행이나 상업은행 8곳의 내년 3분기 중 원·엔 재정환율 예측치 평균은 100엔당 887원이다.

최근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50원대로 2008년 8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엔저 현상은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경제 정책을 일컫는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2012년 9월을 전후해 본격화했다. (연합뉴스)